9년 전 오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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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달에 두 세번씩 해외 출장을 다니던 시절이었다. 졸린 눈으로 공항에 가서 비행기를 탔다. 내 이름이 적힌 팻말을 들고 있는 사람을 따라 버스나 자가용을 타고 어딘가에 내려 촬영을 하고 숙소에 묵었다. 가끔 맥주를 마시기도 했고, 잠잘 시간을 쪼개 낯선 골목을 걸었다.

시간을 내서 영화를 찾아서 보고, 출장 가방에 한두권의 책을 넣어가지고 다니며 읽던 시절이었다. 코엔 형제의 영화 “오 형제여 어디에 있는가”를 몇 번인가 다시 봤다. 국내에 발매되지 않은 OST CD를 구하려고 백방으로 노력했지만 결국 구하지 못했다. 어렵게 미국에 직접 주문해서 받은 CD를 듣고 또 들었다. 지금처럼 직구가 쉽던 시절이 아니었다.

몇 년이 지났고 캐나다 출장길, 마지막 밤 호텔에서 우연히 그 음악을 다시 만났다. 그것도 실황공연으로. 귀국하자마자 아마존에 CD를 주문했고 한동안 다시 그 노래를 듣고 또 들었다.

의도적으로 페이스북을 안 하고 있지만 하루에 한 번은 ‘과거의 오늘’을 찾아본다. 그 시절의 나는 늘 어딘가 낯선 곳에 있었다. 오늘 찾아본 그 날의 나는 캐나다에서 마지막 밤을 보내고 있었다. 호텔의 침대에 누워 ‘Down to the river to pray’를 들으면서.

어쩌면, 서울.

오랜만에 만난 지인과 이야기 중에 ‘십 년이 지나도 똑같은 사진만 찍는 사람’은 별로라는 이야기를 나눴다. 난 조심스럽게 ‘그게 그 사람의 스타일이고 능력이지’라고 했다. 나는 나아지고 있는가, 라고 스스로에게 물었지만 선뜻 대답을 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변명처럼 저런 말을 했는지도 모르겠다.

일 때문에 수백 장의 사진을 찍으면서 나를 위한 사진은 겨우 몇 장을 찍는다. 그리고 맘이 어지러운 밤이면 사진들을 조용히 들여다본다. 마치 변명처럼.

오늘의 일터. 2023-02-02

그러니까 요즘은, 이렇게 잘 꾸며진 깔끔한 새 집 사진을 찍고 있습니다. 때론 아무도 없는 빈집이기도 하고, 가끔은 시공중인 인부들과 가전제품 설치기사, 도끼눈을 한 집주인의 따가운 시선을 받기도 합니다.

최종적인 결과물은 메이크업을 받고 나온 사람처럼 깔끔한 사진이지만 현장상황은 늘, 전쟁터 같습니다. 촬영을 마치고 돌아와 지루하고 고단한 작업을 해야하는 까닭이죠.

‘가끔 후보정을 하는 건 사진 실력이 없는 거다’라거나 ‘사진은 무보정이 진짜지’하는 말들을 듣습니다. 더 나아가 ‘진짜 사진은 필름카메라로 찍는 거지’와 비슷한 얘기도 듣습니다. 그럴 때면 이 사진을 떠올립니다.

필름사진 시절에도 후보정을 했고, 필요하다면 하는 게 당연한 일이었던 거죠. 디지털 사진을 관리, 보정하는 소프트웨어의 이름이 ‘Lightroom’인 것도 필름 시절 암실(Darkroom)에서 하던 작업을 이제 환한 모니터를 보면서 할 수 있어서 라이트룸이 된 거라죠. 이젠 관용표현가 되어버린 ‘포샵(질)’의 그 Photoshop 메뉴 이름들 역시 암실시절 하던 작업의 이름을 그대로 가져온 것도 같은 맥락이죠. 실제로 필름 시절엔 돋보기로 원본필름을 보면서 필름 자체에 닷징, 버닝 등의 작업을 했었구요.

그러고보면 사진이라는 분야는 좀 특별한 것 같습니다. 취미의 한 분야로 볼 때 ‘사진’처럼 결과물과 더불어 도구에 관심이 많은 분야도 없는 것 같습니다. 물론 회화의 경우에도 도구나 방식을 따지기는 하지만 사진은 특히나 장비나 기법을 따지는 것 같습니다. 아마도 ‘장비’라는 분야가 그 자체로 매력적이기 때문이겠죠. 새로운 장비로 새로운 기술을 체험하는 것, 장비의 발전으로 한계를 뛰어넘는 것이 맘에 드는 결과물을 만들어 내는 것만큼 흥미롭고 만족감을 주기 때문일 겁니다.

그래서 저는 ‘사진은 사람이 찍는다’와 ‘사진은 사진기가 찍는다’라는 말 모두 맞다고 생각합니다. 그 사람만이 찍을 수 있는 사진이 있고, 그 사진기로만 찍을 수 있는 사진이 있으니까요. 그래서 ‘좋은 목수는 연장을 가리지 않는다’라는 말은 맞는 말이면서 한편으로 틀린 말이기도 합니다. 그 연장이 있어야지만 찍을 수 있는 상황이 있고, 그 사람만이 만들어내는 결과물이 있으니까요.

아무튼, 이런 얘기를 하려던 건 아니고…… (기회가 되면 좀 자세히 얘기를 해봐야겠습니다.)

촬영하고 돌아오면 일이 끝나는 게 아니라 본격적인 작업이 시작되는 게 일과인데, 이런 컷들은 재미삼아(?) 남겨두는 편입니다.

한 사람 겨우 들어가는 화장실에서 어떻게든 카메라를 우겨 넣어서 촬영하고 지워내는 단순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또 한 군데 ‘오늘의 일터’가 지나갔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