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

기록하지 않는 삶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라고 적었던 기억이 있다.
이제는 언제였는지도 기억나지 않는다. 그 기록을 찾으려고 SNS를 온통 뒤져봤지만 찾을 수 없었다. 이제는 정말, 기록하지 않으면 무의미하게 잊혀진다. 이제 잊혀지지 않기 위해서, 무의미해지지 않기 위해서 기록해야겠다는 다짐을 한다.

봄이 오고 있고, 지리산엘 다녀왔다. 봄비를 맞으면서 화엄사를 걸었고, 커피를 마셨다. 벚꽃이 피면 다시 가기로 약속을 하고 돌아왔다.
일상은 여전히 반복된다.

무선마이크

맨해튼에 고층건물을 수 십채 가지고 있는 부동산 재벌의 아내가 실종됐다. 실종된 부인은 끝내 발견되지 않았다. 경찰은 당연히 남편인 억만장자를 의심하지만 그 어떤 실마리도 찾지 못한다. 시간이 흐르고 사건이 잊혀질 무렵, 억만장자의 친구였던 여자가 실종사건에 대해 증언을 하겠다는 발표를 한다. 발표 후 여자는 살해당한다. 경찰은 이번에도 억만장자를 의심하지만 끝내 진범을 잡지 못한다. 그렇지만 결국엔 부동산 재벌의 범죄가 만천하에 드러난다.

2010년, 부동산 재벌 로버트 더스트는 자신의 이야기를 토대로 만든 영화 ‘All Good Things’가 개봉하고 화제가 되자 자신과 관련된 다큐멘터리에 출연한다. 촬영이 끝나고 화장실에서 그가 중얼거린 말이 결정적인 단서가 됐다.

당시 인터뷰 촬영을 위해 무선마이크를 착용하고 있었던 더스트는 그 사실을 잊고 화장실에서 ‘물론 내가 다 죽여버렸지’라고 중얼거린다. 그 목소리는 고스란히 녹음이 됐다. 친구가 죽은 뒤 잠적했다가 자신의 이야기로 만든 영화를 보고 자기가 직접 자신의 이야기를 하겠다고 나섰다가 범행을 자백한 꼴이 됐다.

*

사진이나 영상 촬영을 업으로 하는 사람들이 장비에 눈독을 들이기 시작하면 답이 없다. 촬영비를 전부 장비 구입에 쏟아붓고 때로는 버는 것보다 더 많은 돈을 장비 구입에 쓰기도 한다. 필요하기 때문에 구입하기도 하지만, 써보고 싶어서 사기도 한다. 누군가는 그런 말을 한다. 써보고 싶은 걸 일한다는 핑계를 대고 맘껏 써볼 수 있으니 얼마나 좋으냐고. 글쎄, 좋은가? 잘 모르겠네.

무선마이크가 필요한 촬영을 몇 번 했다. 그럴 때마다 렌탈샵에서 빌리기도 했고, 지인에게 빌리기도 했다. 커피값 정도면 충분했다. 카메라에 직접 연결해서 쓰는 마이크가 필요한 촬영을 하기 전엔 마이크를 하나 샀다. 농담처럼 이번 촬영을 하고나서 마이크만 남아도 성공이다, 라고 얘기했다. 물론 마이크는 여전히 잘 쓰고 있다. 어쩌다 한 번씩 쓰지만. 무선마이크를 살까 망설이다 결국 사기로 했다. 강의 촬영을 해야 할 일이 생겼는데 그 때마다 빌릴 수는 없다는 핑계를 스스로에게 댔다.

첫 시간, 미리 강사에게 무선마이크를 건넸다. 타이에 마이크를 고정하고 수음이 잘 되는 걸 확인했다. 대기하는 동안 리시버의 전원은 켜둔 채로 카메라 전원을 껐다. 강의실에서 떨어진 강사대기실에서 강사가 책장을 넘기는 소리까지 들렸다. 첫째 시간이 끝나고 휴식시간에도 강사는 여전히 무선마이크를 끼운 상태로 화장실에 다녀왔다. 나는 강의가 끝나자마자 카메라 전원을 내렸다. 혹시라도 강의가 다시 시작됐을 때 수신이 안 될까봐 수신기의 전원을 끌 수는 없었다.

두 시간 강의가 다 끝나고 강의실을 나가는 강사를 따라나섰다. 수고하셨다는 인사와 함께 마이크를 달라고 하자 강사는 깜짝 놀랐다. ‘아, 마이크가 있었네요. 저는 그것도 모르고 화장실도 가고, 전화도 받고 했는데……’ 표정을 보니 정말 당황한 모습이었다. 나는 손사레를 치며 얘기했다. ‘아이고, 강의시간 외에는 아예 전원을 내려놨었습니다.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정말 딱, 강의시간에만 켰습니다.’

두 번째 강의를 하기 위해 시작 전에 도착한 강사에게 무선마이크를 건넸다. 아마도 강의 경력이 많아서였을까, 강사는 자기가 하겠다며 강의 시작과 동시에 마이크를 끼고, 휴식시간에는 마이크를 빼놨다. 덕분에 나는 카메라 전원을 끄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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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호기심은 있다. 버스 안에서 들려오는 전화통화 목소리에 빠져들기도 한다. SNS 파도타기를 하면서 타인의 삶을 훔쳐보기도 한다. 가까운 사람들의 다이어리가 궁금해 슬쩍 넘겨보기도 한다. 의도하지 않았는데 타인의 삶 한복판에 서있는 순간이 오기도 한다. 그렇지만 내 것을 보여주긴 싫어한다. 누군가 내 삶에, 허락없이 들어오는 것만큼 부담스럽고 무서운 일도 없다.

답은 늘 간단하다. ‘내가 싫은 건 남도 싫어한다’는 것만 기억하면 된다. 누군가 당신에게 허락하지 않았다면 무슨 일이 있어도 그 사람의 삶에 침입해선 안 된다. 설사 의도치 않게 그 안에 던져진다 하더라도 빠져나와야 한다. 당신, 그러고 있는가?

휴식시간, 무선마이크 전원을 끄고 잠깐 내려다본다.

오랜만에 쓰는 일기

길지 않은 하루가 있었을까, 잠깐 생각해본다.

여행지에서의 하루, 사람들을 만나 떠든 하루, 급하게 해야 할 일에 매달린 하루…… 그래, 길지 않은 하루도 많았구나. 그렇지만 그 날들도 지나고 나면, 집에 돌아갈 시간이 되면 ‘긴 하루’가 되지 않았던가.

무언가 잘못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정을 알리는 라디오 소리를 들을 때였다. 일을 한다고는 하지만 늘 시간에 쫓기고, 때론 맞지 않는 옷을 입은 것처럼 부담스러웠다. 내 능력으로 할 수 없는 일들을 하겠다고 달려든 건 아닌지 불안했고, 어떻게든 이번만 잘 마무리하자는 생각을 했다. 상반기에 잡혀있던 출장은 전부 취소됐고, 같이 일하기로 했던 사람들에겐 공수표를 날린 사람이 되어버린 기분이다. 아니, 결과적으로 보자면 공수표를 날린 셈이 됐다.

하루 일하고 하루 사는 인생이 되어버렸다.

자존감이라는 게 있었다면, 그나마 있던 자존감마저 바닥에 내동댕이쳐진 그런 기분이다. 모든 것이 부끄럽다.

오늘은, 집으로 가는 길이 꽤나 먼 길이 되겠구나.

동어반복의 날들

동어반복의 날들이다.

‘엔딩노트’를 보며 펑펑 울다 잠이 들었다. 마지막 그 며칠간 병실 풍경을 보며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 어린 손녀들 손을 잡고 눈물을 흘리던 장면과, 자식들을 내보내고 부부가 울먹이며 사랑한다고, 같이 따라가고 싶다고 말하던 장면을 보며 소리내어 울었다.

일요일 밤이 그렇게 지나갔다. 날이 밝았고, 눈을 뜨자마자 늘 하던대로 휴대폰을 확인했다. 먼 나라에서 살고 있는 선배의 부음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잠이 들었다 깨어나지 못했다는 얘기를 듣고 한참을 침대에서 일어날 생각도 하지 못하고 앉아있었다. ‘엔딩노트’에서 그런 말이 나왔었지. 자다가 깨어나지 않는, 고통스럽지 않은 죽음을 맞이하고 싶다고. 선배가 고통스럽지 않게 돌아갔는지는 모른다.

대학시절, 한 학번 선배와 사귀면서 갈곳이 없었던 우리는 그의 동기들이 자취하는 방을 드나들었다. 나는 기숙사 생활을 했고, 그는 하숙을 했기에 우리가 맘놓고 갈 수 있는 곳은 그의 동기들이 자취하는 방밖에 없었다. 주인이 없는 방을 차지하고 놀다보면 주인들이 돌아와 손님처럼 구석에 앉아있곤 했다. 두 사람 중 한 선배는 대학을 졸업하고 미국으로 떠났다. 떠나기 전이었는지 떠난 후였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마지막으로 신촌의 어느 바에서 칵테일을 마시며 이야기를 나눴었다. 그리고 간간히 소식을 전해들었다. 몇 년전엔 잠깐 귀국한 선배와 동기들이 모이는 자리에 나갔었다. 그 자리에서도 잠깐 대학시절 내 철없던 연애이야기가 돌았던가.

출장으로 시애틀에 들렀을 때, 밴쿠버에서 일정을 마치고 시애틀 스타벅스에서 마지막 촬영을 할 때 낯선 번호로부터 전화가 왔다. 그 선배였다. 여유가 되면 얼굴이라도 보면 좋으련만 그게 어려우니 이렇게 목소리라도 듣고 싶어서 전화를 했다는 말에 반갑게 인사를 하고 또 오게 되면 얼굴 보자는 얘기를 나눴다. 한 번인가 더 시애틀에 들렀지만 전화도, 연락도 못하고 돌아왔다. 선배가 한국에 들어오면 다른 선배들과 만나서 또 옛날 연애이야기를 하면서 웃으리라 생각했다.

그 선배의 부음을 보고 처음엔 부친상이겠거니 싶었다. 눈을 비비고 다시 보니 본인상이라고 적혀있었다. 본인상, 이라는 문자를 몇 번인가 받았다. 그 때마다 아무 것도 하지 못하고 멍하니 앉아 있다 겨우 일어나곤 했다. 몇 번을 마주쳐도 결코 익숙해지지 못할 문자들, 순간들.

오후엔 원주에 다녀왔다. 돌아간 선배와의 시간을 나보다도 더 많이 공유하고 있을 선배를 만났다. 아침의 문자가 아니었다면 오랜만에 만난 선배와 웃고 떠들며 이야기하고, 일이 끝나고 기분 좋게 술이라도 한잔 할 수 있었을텐데 선배도 나도 웃을 기분이 아니었다. 저녁을 먹고 어두운 고속도로를 달려 돌아오는 길, 먼 나라를 생각했다. 시애틀 스타벅스 앞, 생선을 가득 실은 차에서 퍼블릭마켓으로 짐을 나르던 사람을 바라보던 순간, 낯선 번호의 전화를 받고 반갑게 인사를 나누던 순간을. 철없던 시절 내 연애 때문에 고생했던 일들을 얘기하며 웃던 선배를, 내 스무살의 날 둥지처럼 찾던 선배의 자취방을.

동어반복의 날들이다. 그리고 나는 불이 꺼진 고속도로를 언제까지고 달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