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선마이크

맨해튼에 고층건물을 수 십채 가지고 있는 부동산 재벌의 아내가 실종됐다. 실종된 부인은 끝내 발견되지 않았다. 경찰은 당연히 남편인 억만장자를 의심하지만 그 어떤 실마리도 찾지 못한다. 시간이 흐르고 사건이 잊혀질 무렵, 억만장자의 친구였던 여자가 실종사건에 대해 증언을 하겠다는 발표를 한다. 발표 후 여자는 살해당한다. 경찰은 이번에도 억만장자를 의심하지만 끝내 진범을 잡지 못한다. 그렇지만 결국엔 부동산 재벌의 범죄가 만천하에 드러난다.

2010년, 부동산 재벌 로버트 더스트는 자신의 이야기를 토대로 만든 영화 ‘All Good Things’가 개봉하고 화제가 되자 자신과 관련된 다큐멘터리에 출연한다. 촬영이 끝나고 화장실에서 그가 중얼거린 말이 결정적인 단서가 됐다.

당시 인터뷰 촬영을 위해 무선마이크를 착용하고 있었던 더스트는 그 사실을 잊고 화장실에서 ‘물론 내가 다 죽여버렸지’라고 중얼거린다. 그 목소리는 고스란히 녹음이 됐다. 친구가 죽은 뒤 잠적했다가 자신의 이야기로 만든 영화를 보고 자기가 직접 자신의 이야기를 하겠다고 나섰다가 범행을 자백한 꼴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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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이나 영상 촬영을 업으로 하는 사람들이 장비에 눈독을 들이기 시작하면 답이 없다. 촬영비를 전부 장비 구입에 쏟아붓고 때로는 버는 것보다 더 많은 돈을 장비 구입에 쓰기도 한다. 필요하기 때문에 구입하기도 하지만, 써보고 싶어서 사기도 한다. 누군가는 그런 말을 한다. 써보고 싶은 걸 일한다는 핑계를 대고 맘껏 써볼 수 있으니 얼마나 좋으냐고. 글쎄, 좋은가? 잘 모르겠네.

무선마이크가 필요한 촬영을 몇 번 했다. 그럴 때마다 렌탈샵에서 빌리기도 했고, 지인에게 빌리기도 했다. 커피값 정도면 충분했다. 카메라에 직접 연결해서 쓰는 마이크가 필요한 촬영을 하기 전엔 마이크를 하나 샀다. 농담처럼 이번 촬영을 하고나서 마이크만 남아도 성공이다, 라고 얘기했다. 물론 마이크는 여전히 잘 쓰고 있다. 어쩌다 한 번씩 쓰지만. 무선마이크를 살까 망설이다 결국 사기로 했다. 강의 촬영을 해야 할 일이 생겼는데 그 때마다 빌릴 수는 없다는 핑계를 스스로에게 댔다.

첫 시간, 미리 강사에게 무선마이크를 건넸다. 타이에 마이크를 고정하고 수음이 잘 되는 걸 확인했다. 대기하는 동안 리시버의 전원은 켜둔 채로 카메라 전원을 껐다. 강의실에서 떨어진 강사대기실에서 강사가 책장을 넘기는 소리까지 들렸다. 첫째 시간이 끝나고 휴식시간에도 강사는 여전히 무선마이크를 끼운 상태로 화장실에 다녀왔다. 나는 강의가 끝나자마자 카메라 전원을 내렸다. 혹시라도 강의가 다시 시작됐을 때 수신이 안 될까봐 수신기의 전원을 끌 수는 없었다.

두 시간 강의가 다 끝나고 강의실을 나가는 강사를 따라나섰다. 수고하셨다는 인사와 함께 마이크를 달라고 하자 강사는 깜짝 놀랐다. ‘아, 마이크가 있었네요. 저는 그것도 모르고 화장실도 가고, 전화도 받고 했는데……’ 표정을 보니 정말 당황한 모습이었다. 나는 손사레를 치며 얘기했다. ‘아이고, 강의시간 외에는 아예 전원을 내려놨었습니다.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정말 딱, 강의시간에만 켰습니다.’

두 번째 강의를 하기 위해 시작 전에 도착한 강사에게 무선마이크를 건넸다. 아마도 강의 경력이 많아서였을까, 강사는 자기가 하겠다며 강의 시작과 동시에 마이크를 끼고, 휴식시간에는 마이크를 빼놨다. 덕분에 나는 카메라 전원을 끄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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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호기심은 있다. 버스 안에서 들려오는 전화통화 목소리에 빠져들기도 한다. SNS 파도타기를 하면서 타인의 삶을 훔쳐보기도 한다. 가까운 사람들의 다이어리가 궁금해 슬쩍 넘겨보기도 한다. 의도하지 않았는데 타인의 삶 한복판에 서있는 순간이 오기도 한다. 그렇지만 내 것을 보여주긴 싫어한다. 누군가 내 삶에, 허락없이 들어오는 것만큼 부담스럽고 무서운 일도 없다.

답은 늘 간단하다. ‘내가 싫은 건 남도 싫어한다’는 것만 기억하면 된다. 누군가 당신에게 허락하지 않았다면 무슨 일이 있어도 그 사람의 삶에 침입해선 안 된다. 설사 의도치 않게 그 안에 던져진다 하더라도 빠져나와야 한다. 당신, 그러고 있는가?

휴식시간, 무선마이크 전원을 끄고 잠깐 내려다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