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어반복의 날들

동어반복의 날들이다.

‘엔딩노트’를 보며 펑펑 울다 잠이 들었다. 마지막 그 며칠간 병실 풍경을 보며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 어린 손녀들 손을 잡고 눈물을 흘리던 장면과, 자식들을 내보내고 부부가 울먹이며 사랑한다고, 같이 따라가고 싶다고 말하던 장면을 보며 소리내어 울었다.

일요일 밤이 그렇게 지나갔다. 날이 밝았고, 눈을 뜨자마자 늘 하던대로 휴대폰을 확인했다. 먼 나라에서 살고 있는 선배의 부음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잠이 들었다 깨어나지 못했다는 얘기를 듣고 한참을 침대에서 일어날 생각도 하지 못하고 앉아있었다. ‘엔딩노트’에서 그런 말이 나왔었지. 자다가 깨어나지 않는, 고통스럽지 않은 죽음을 맞이하고 싶다고. 선배가 고통스럽지 않게 돌아갔는지는 모른다.

대학시절, 한 학번 선배와 사귀면서 갈곳이 없었던 우리는 그의 동기들이 자취하는 방을 드나들었다. 나는 기숙사 생활을 했고, 그는 하숙을 했기에 우리가 맘놓고 갈 수 있는 곳은 그의 동기들이 자취하는 방밖에 없었다. 주인이 없는 방을 차지하고 놀다보면 주인들이 돌아와 손님처럼 구석에 앉아있곤 했다. 두 사람 중 한 선배는 대학을 졸업하고 미국으로 떠났다. 떠나기 전이었는지 떠난 후였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마지막으로 신촌의 어느 바에서 칵테일을 마시며 이야기를 나눴었다. 그리고 간간히 소식을 전해들었다. 몇 년전엔 잠깐 귀국한 선배와 동기들이 모이는 자리에 나갔었다. 그 자리에서도 잠깐 대학시절 내 철없던 연애이야기가 돌았던가.

출장으로 시애틀에 들렀을 때, 밴쿠버에서 일정을 마치고 시애틀 스타벅스에서 마지막 촬영을 할 때 낯선 번호로부터 전화가 왔다. 그 선배였다. 여유가 되면 얼굴이라도 보면 좋으련만 그게 어려우니 이렇게 목소리라도 듣고 싶어서 전화를 했다는 말에 반갑게 인사를 하고 또 오게 되면 얼굴 보자는 얘기를 나눴다. 한 번인가 더 시애틀에 들렀지만 전화도, 연락도 못하고 돌아왔다. 선배가 한국에 들어오면 다른 선배들과 만나서 또 옛날 연애이야기를 하면서 웃으리라 생각했다.

그 선배의 부음을 보고 처음엔 부친상이겠거니 싶었다. 눈을 비비고 다시 보니 본인상이라고 적혀있었다. 본인상, 이라는 문자를 몇 번인가 받았다. 그 때마다 아무 것도 하지 못하고 멍하니 앉아 있다 겨우 일어나곤 했다. 몇 번을 마주쳐도 결코 익숙해지지 못할 문자들, 순간들.

오후엔 원주에 다녀왔다. 돌아간 선배와의 시간을 나보다도 더 많이 공유하고 있을 선배를 만났다. 아침의 문자가 아니었다면 오랜만에 만난 선배와 웃고 떠들며 이야기하고, 일이 끝나고 기분 좋게 술이라도 한잔 할 수 있었을텐데 선배도 나도 웃을 기분이 아니었다. 저녁을 먹고 어두운 고속도로를 달려 돌아오는 길, 먼 나라를 생각했다. 시애틀 스타벅스 앞, 생선을 가득 실은 차에서 퍼블릭마켓으로 짐을 나르던 사람을 바라보던 순간, 낯선 번호의 전화를 받고 반갑게 인사를 나누던 순간을. 철없던 시절 내 연애 때문에 고생했던 일들을 얘기하며 웃던 선배를, 내 스무살의 날 둥지처럼 찾던 선배의 자취방을.

동어반복의 날들이다. 그리고 나는 불이 꺼진 고속도로를 언제까지고 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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