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 얼굴 위로 쑥은 다시 돋아나고 – 심노숭

동쪽 뜰에 눈 녹아 시냇물 흐르는데
봄 그늘 땅에 드리우고 교태로운 구름은 두둥실
중문은 적막하고 후당은 닫힌 채
주렴에는 거미줄과 먼지들
담장 동쪽 오래된 홰나무 아래
실같이 가녀린 푸른 쑥의 새싹 올라오네.

그대 있을 적엔 매년 쑥으로 음식 만들어
집에는 기쁨과 웃음 가득, 시누동서 한자리에 모였지
치마 걷어 올려 허리에 끈으로 졸라매고
손에는 호미를 쥐었네.
모친은 그 모습 지켜보면서 많은지 적은지를 매기시고
그대는 계속 쑥을 뜯고, 딸아이는 광주리 들고 곁에 있었지.

순식간에 국이 다 되고 밥도 뜸이 다 들어
북쪽 시장에서 장을 사고, 서쪽 시장에선 기름을 사오네.
마침 문 앞에 생선장수 있어 한 꿰미 생선을 사니
생선이며 봄 음식이며 상에 낭자하네.
밥상 앞에 나서니 응당 술 한잔 생각나
그대는 패물을 풀어 어린 계집종에게 주며 술 받아 오라 시켰지.
술을 기다리는 동안 이런저런 얘기 도란도란
골목 어귀 신씨 아낙 집에 새로 술을 걸렀다지.
밥상에 둘러앉아 웃음소리 시끌하고
나는 또한 시 한 수 읊조리니 온갖 시름 다 잊히네.

지난해 나는 관서지역으로 나가
3개월간 그곳 강산 구경하며 천리 멀리서 노닐었지.
돌아와 보니 그대는 병들었고 쑥 또한 다 시들어
그대 울면서 하는 말, “여행이 왜 이리 길어졌는지요?
그때의 물건은 흐르는 물과 같아 사람을 기다리지 않으니
우리네 인생은 그 사이에 하루살이 같은 것
제가 죽고 난 이듬해에도 쑥은 다시 나올지니
그 쑥 보면서 저를 생각해 주시겠죠?”

오늘 우연히 제수 씨가 차려 준 상 위에
부드러운 쑥이 놓여 있기에 문득 목이 메이네.
그때 나를 위해 쑥 캐주던 이
그 얼굴 위로 흙이 도톰히 덮이고 거기서 쑥이 돋아났다네.

 

*

 

봄은 어디서부터 오는가? 내게 봄은 심노숭의 글을 다시 읽으며 시작된다. 몇해째 봄날 날카로운 바람이 불면 이 글을 떠올린다.

출장에서 돌아와 졸린 눈을 비비며 우두커니 앉아있던 오후, 심노숭의 글을 생각한다. 이제 정말 봄이 오려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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