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휴의 끝

설 연휴가 지나갔다. 몸은 집 밖을 나서지 않은 며칠이었지만 꽤 기억에 남을(여러가지 의미로) 연휴였다. 연휴 마지막날 설거지를 하다가 손바닥에 와인잔이 박히는 일도 있었고, 갑작스런 부고에 상갓집에도 다녀왔다.

상갓집에 다녀올 때마다, 당연한 일이겠지만 마음이 좋질 않다. 이제 점점 더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는 걱정 때문이기도 할테고, 지나간 시간들에 대한 생각들 때문이기도 하겠지. 동네에서 형동생하며 놀던 사람들이 중년의 아저씨가 되어 앉아 있는 모습을 보는 것도 여전히 낯선 일이다. 시간이 벌써 이렇게 흘렀구나 하는 생각에 깜짝깜짝 놀란다.

더 열심히, 더 잘 살아야겠다는 다짐을 한다. 그래봐야 모호한 이야기지만.

오늘의 일터. 2023-01-20

볕 좋은 오후, 촬영을 마치고 열심히 일한 카메라를 소품처럼 한 컷. 뭔가 있어보이고, 깔끔하면서 엘레강스하고 모던하면서 심플한 멋진 인테리어 같지만 사실은…

늘 이런 식입니다요. 시간에 쫒기고, 공간에 쫒기고… 욕실 촬영을 할 때면 늘 이런 식이라 잘 숨는 편인데 이렇게 멋진(?) 장면이 남기도 합니다. 물론, 최종 결과물은 아무렇지도 않은 깔끔한 사진으로 나가니까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

뭐, 다 먹고 살자고 하는 일인데요…

다시, 또.

1990년대, 어쨌든 네 자리 숫자의 앞자리가 1이었던 시절에 가끔씩 지인들에게 편지를 쓰곤 했었다. 연말이면 손으로 적은 카드와 연하장을 보냈고 특별한 일이 있으면 손편지를 썼었다. 그러다 이메일로 소소한 일상을 적어서 보내기 시작했다. 20년도 넘은 이야기다. 그리고 이 도메인 zust4u.com을 쓰기 시작한 것도 그 무렵이었다.

꽤나 정성을 들였다. 게시판을 몇 개 만들고, 매일 사진을 찍어서 현상하고 인화해서 스캔을 했다. 하루에 필름 한 롤씩 사진을 찍던 시절이었고 모든 사진들을 홈페이지에 올렸다. 블로그라는 말이 생기기도 전이었다. 익명게시판을 붙여놨고, 누군지 짐작이 가는 이들이 거기에 혼잣말을 남기기도 했다. 음악을 한 곡씩 올리기도 했고, 읽은 책들과 본 영화들의 이야기를 올렸다. 지인들이 댓글을 달아줬고, 자주 술을 마셨다.

전혀 모르는 낯선 사람이 글을 남겼고 신촌에서 만나 식사를 같이 하기도 했다. 글을 쓰는 사람도 있었고 동화책을 만드는 사람도 있었다. 뜬금없는 이야기를 적은 편지를 주고 받기도 했다.

어쩌다 홈페이지가 다운되면 전전긍긍하면서 수시로 접속을 했다. 모바일 인터넷이라는 게 존재하지도 않았던 시절이니 책상에 앉아서 커다란 CRT모니터를 보면서 하염없이 새로고침을 누르고 있었다. 그래봐야 누구하나 신경쓰지 않는 개인 홈페이지였을 뿐인데…

꽤 오랫동안 홈페이지를 꾸려나갔다. 시간이 지나면서 몇 번인가 데이터를 다 지우고 새로 시작했고, 그러다가 아예 도메인까지 날려버렸다. 더이상 음악을 듣지 않고 책을 읽지 않았다. 새로 개봉되는 영화는 낯선 도시까지 찾아가서 보던 노력도 하지 않았다. 잠깐씩 회사를 다녔고, 생계를 위해 부업으로 시작한 영상과 사진이 밥벌이가 됐다. 그 시절에는 꿈도 꾸지 못할 장비들을 아무렇지도 않게 구해서 들고 다니게 됐다. 그렇지만 예전처럼 사진을 찍지도, 영상을 만들지도 않는다.

시간은 모든 것을 낡게 만든다. 나도 그렇게 낡아가고 있다.

이제 밥벌이 홍보 때문에라도 블로그니, 홈페이지니, SNS니 하는 것들을 챙겨야 하는 시대가 됐다. 한동안 SNS에 빠져 지냈다. 매일 그날의 하늘을 찍어서 올렸고, 짧은 영상을 만들었다. 생각나는 것들을 거칠게 적기도 했고, 사람들과 댓글을 주고받기도 했다. 그러다 어느 순간부터 그것조차 하지 않았다. 하는 일이라도 알리기 위해서 다시 무언가를 해야 하는 건 아닐까 하는 조바심이 들었지만 늘 그렇듯, 생각만 할 뿐이었다.

다시 도메인을 등록하고, 호스팅을 하고, 블로그를 설치한지도 벌써 며칠이 지났다. 소소한 일기장을 하나 산 기분이 들었다. 누구도 궁금해하지 않을 일들과 별로 재미없는 이야기들이라도 남겨야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서 문든 그 시절, 2000년을 앞두고 있었던 그 날들이 떠올랐다. 이메일 주소를 하나하나 적어넣고 보내던 그 편지들이 생각났다. 그 편지들처럼 부끄럽고 유치한 일상의 이야기들을 적고 싶었다. 내가 적었던 메일들은 어딘가로 사라졌지만 다행히 그걸 전부 보관하고 있던 친구에게 다시 보내달라고 해서 받아둔 메일들을 찾아봤다.

두 통쯤 읽어보다 그만뒀다. 하긴 96년도, 매일 술이나 마시고 다니던 대학원생 시절이었으니 오죽했을까… 옛날 메일들을 뒤지다가 엄마와 아버지가 보낸 메일들을 찾았다. 아마 문화센터에서 인터넷 교육 실습시간에 쓰셨던 게지. 이 밤중에 그 메일들을 보다 눈물을 참았다. 그 메일들에 나는, 답장을 보냈었을까?

시간은 모든 것을 낡게 만든다. 엄마도, 아버지도 그렇게 낡아가고 있다.

비슷하지만 조금씩 낡아가는, 긴 날들이 지나고 있다. 이제 다시, 조금씩 무언가를 남겨야겠다. 살아지는 이야기, 일 하는 순간들, 밥은 먹고 다니는지… 적기 위해서라도 책을 읽고, 음악을 듣고, 영화를 봐야겠다. 다 먹고 살자고 하는 일인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