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성우 [流星雨, meteoric shower]
지구가 연 1회 유성군의 궤도와 만날 때 일시에 다수의 유성을 보게 되는 일.
모든 유성군이 유성우를 수반하지는 않고, 또 같은 유성군이라도 유성우는 몇 년 주기로 볼 수 있다. 이것은 유성물질이 궤도상에 가득히 분포되어 있는 것이 아니고, 특별히 농밀한 집괴(集塊)가 궤도의 공전주기로 태양 주위를 회전하고 있으며, 이 집괴를 만날 때 유성우를 볼 수 있다.
특히 11월의 사자자리 유성군에는 과거에 몇 번이나 유성우가 나타났고, 근년에 와서도 1799, 1833, 1866년으로 궤도주기인 33년으로 회귀하고 있다. 유성우가 나타날 때는 1시간에 1만 개 이상의 유성을 볼 수 있었다는 기록도 있는데, 1946년 10월 9일 북아메리카대륙에서는 용자리 유성군의 유성우가 나타났다.

*

“별똥별”
입으로 나지막하게 소리내본다. 여전히 조금은 우습고 귀여운 이름이다. 별똥별이라니.
처음으로 별똥별을 본 건 열 살 때였다. 식구들과 저녁을 먹고 마당에 있는 평상에 누워있었다. 쏟아질 것처럼 많은 별들이 떠있었고 잘 알지도 못하면서 무슨무슨 별자리를 찾는다고 여기저기 손을 짚어가고 있을 때였다. 잠깐, 아주 잠깐 반짝하는 불빛과 함께 긴 꼬리를 끌고 별이 하나 떨어졌다. 열 살의 꼬마 귀에는 쉬익, 하고 별이 떨어지는 소리가 분명하게 들렸다.
“누나 저거 봤어? 별똥별?”
“어디어디?”
“벌써 다 떨어졌나보다.”
“별똥별을 봤을 땐 말을 하지 말고 소원을 비는 거란다. 말을 하면 소원이 이루어지지 않는 거야.”
옆에서 모깃불을 뒤적이고 계시던 아버지가 꼬마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씀하셨다.
솔직히 말하자면 처음으로 별똥별을 본 기분이 그렇게 좋진 않았다. 뭐랄까 소름이 끼쳤다고나 할까, 약간 오싹한 기분이 들었고 왠지 모르게 불안했다. 한참이 지난 후의 일이지만 누군가 죽게 되면 그 영혼이 별똥별이 되어 사라진다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그 여름의 별똥별을 떠올렸다.
그이후로 지금까지 몇 번인가 별똥별이 떨어지는 걸 봤다. 나이를 먹었지만 여전히 누군가의 영혼이 사라지는 순간을 보는 일은 낯설었다. 언제나 혼자 있을 때였고 오싹한 기분이 들었다. 별똥별을 볼 때마다 소원을 빌었지만 아직까지 이루어진 소원은 아무 것도 없다.

“1866년에 혜성이 뿌리고 간 잔해들이 이제야 별똥별이 되어서 떨어지는 거래.”
비가 갠 하늘은 맑았다. 날카로운 공기를 크게 들이마시고 횡단보도 앞에 서 있을 때였다. 갈래머리를 한 여자아이와 어색해 보이는 정장을 입은 남자아이가 두 손을 잡고 조잘거리고 있었다.
“1966년이 아니고?”
“그런가, 아냐, 1866년이 맞대. 그 때 떨어졌던 부스러기들이 지구의 공전궤도 주변에 있다가 이제야 가까워져서 떨어지는 거라던데.”
“별 걸 다 아네.”
“그러게 신문 좀 보시지.”
뭐가 그렇게 좋은지 둘은 연신 키득거리고 있었다. 신호가 바뀌었고 사람들은 종종걸음으로 거리를 건넜다. 아침에 라디오에서 들었던 뉴스가 떠올랐다. 밤 10시부터 4시 사이가 유성우를 관찰하기에 제일 좋은 시간이라고 했던 게 기억났다.
“유성우라…….”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별똥별과는 전혀 다른 느낌이었다. 작고 귀여운 느낌이 아니라 뭔가 대단한 일이 벌어질 것만 같은 생각이 들었다. 검푸른 하늘을 가로지르는 수많은 별들, 긴 꼬리를 끌고 무수히 떨어지는 별.똥.별.들.이라니.

별을 눈여겨 보게 된 건 언젠가 어머니가 사다주신 잡지를 일고나서부터였다. 과학 잡지였던 그 책엔 매달 그 달에 볼 수 있는 별자리가 자세히 실렸고 시골집에선 언제든 고개만 들면 별을 볼 수 있었다. 여름이면 마당의 평상에 누워서 잠이 들 때까지 깜빡이는 별을 보기도 했고, 가끔 움직이는 별을 보기도 했다. 그렇지만 여전히 별자리는 알아볼 수 없었고, 겨우 북두칠성을 찾아보곤 했지만 그게 어째서 큰곰자리인지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저 별은 반짝이고 있었고 은하수는 쏟아질 것처럼 빛나고 있었다.
중학생이 되고부터는 마당의 평상에 눕는 일이 점점 줄어들었고 식구들과 이야기하는 시간은 아예 사라졌다. 별똥별은 아마도 계속 떨어지고, 사람들의 영혼은 계속 세상을 떠났겠지만 더 이상 과학 잡지 따위는 펼쳐보지 않았고 아버지도 내 머리를 쓰다듬어주시지 않았다. 마당의 평상은 여름 장마에 썩어갔고, 누나와 얼굴을 마주하는 건 아침 먹을 때 뿐이었다.

비가 내렸던 하늘은 언제 그랬냐는 듯 푸르렀다. 잠깐 올려다 본 하늘엔 구름이 흐르고 있었다. 주섬주섬 가방을 열고 사진기를 꺼냈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흘낏 쳐다봤다. 고개를 뒤로 꺾고 하늘을 향해 사진기들 들이대고 심호흡을 한 번 하고 셔터를 눌렀다. 순간, 하늘은 그림이 되어 내려앉고 세상은 멈췄다. 학생들을 가득 실은 버스도, 커다란 경적소리를 내며 달리던 화물차도, 누군가의 점심이 들어있을 배달가방을 한 손에 들고 위태롭게 운전을 하는 오토바이도. 나는 화가가 되었다. 구름을, 시간을 그려내는.
세상은 다시 숨쉬기 시작했다. 버스에 탄 사람들은 쉴 새 없이 떠들고 있었고, 커다란 화물차는 덜컹거리며 내 옆을 지나 달려갔다.
사진을 찍기 시작하면서 잊고 있었던 하늘을 기억해냈다. 초등학교 때 친구와 함께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잠자리를 잡으려고 올려다봤던 하늘, 운동회 날 식구들과 앉아서 점심을 먹으면서 바라보던 하늘, 비가 많이 내리던 여름, 동네 앞 벌판까지 물이 찼을 때 옥상에 올라가서 원망스레 쳐다봤던 하늘을. 그렇지만 밤의 하늘을 기억해낸 건 고등학교 때였다. 가지 말라고 붙잡는 반장을 뿌리치고 학교를 나서던 날 올려다봤던 하늘은 참으로 맑았다. 쏟아질 것 같은 별을 보면서 한참을 걸었고, 부산으로 가는 밤기차에 올라탔다. 기차는 밤새도록 달렸고, 멀리서 슬금슬금 새벽이 찾아올 때 올려다본 부산의 밤하늘을 나는 기억하고 있다.

“유성우라……. 오늘이던가요?”
후배와 점심을 먹으면서 별똥별 이야기를 꺼냈다.
“그렇다던데. 잘 하면 한 시간에 수백 개의 별똥별을 볼 수 있대.”
“그래요? 지난번에도 그랬는데 별로 안 보이던데.”
“그래? 난 이번이 처음인데.”
“유성우는 무슨 유성우, 그 시간에 조금이라도 더 자는 게 남는 거지. 안 그래요?”
김치를 집어 올리며 후배가 말했다. 하긴.
커피를 마시며 은행잎이 지천인 교정을 걷다 문득 기억이 떠올랐다. 유성우를 보려고 했던 게 이번이 처음이 아니라는 사실이.
새벽에 집에서 나와서 한밤중에 들어가는 날들이었다. 특별히 뭔가를 하는 것도 아니었는데 단지 왔다 갔다 하는 시간이 그렇게 걸렸다. 결국 매일 아침이면 코피를 흘렸고 항상 머리가 지끈거렸다. 그러다 아는 동생이 이사 가면서 비게 된 방을 빌려서 자취를 시작했다. 짐이라곤 책 몇 권과 컴퓨터가 전부였다. 밤이면 가끔씩 요란한 소리를 내며 폭주족들이 지나갔고 어떤 날은 음주운전 검문을 하는 경찰을 택시가 치고 지나가기도 했다. 한밤중에 슬리퍼를 끌면서 라면을 사러 나가기도 했고 하루 종일 아무 것도 먹지 않고 잠만 자기도 했다. 유성우를 보려고 한참을 서 있었던 날 밤, 요란한 소리를 내면서 택시가 경찰을 치었고, 시끄럽게 울리는 구급차 사이렌 소리를 들으면서 무덤 같은 방으로 들어갔던 기억이 떠올랐다. 그 날도 한 시간에 수백 개의 별똥별이 떨어진다고 했었지만 나는 단 한 개의 별똥별도 보지 못했다.

천문대를 알아본 건 십년 만에 만난 초등학교 동창 때문이었다. 양평 근처 어딘가에 있다는 천문대 이야기를 했고 나중에 시간나면 한 번 가고 싶다는 말을 했다. 천문대라면 영화에서나 본 게 전부였지만 어깨를 맞대고 담요를 두르고 수풀에 앉아 하늘을 바라보는 장면을 떠올렸다. 그러고 있다보면 머리 위로 별똥별이 떨어지고, 탄성을 지르고, 소원을 빌고……. 인터넷을 뒤져서 천문대 가는 길과 관측 프로그램에 대해서 알아뒀지만 그게 전부였다. 여전히 천문대는 내겐 낯선 곳이었고 누구도 담요 따위를 어깨에 두르고 별을 보지는 않을 것 같았다. 그 후로 양평에 사는 친구를 찾아가는 길에 천문대 가는 이정표를 볼 때마다 어딘가에서 어깨에 담요를 두르고 별을 보고 있을 동창을 잠깐씩 생각하곤 했다.
가끔 새벽녘에 집에 돌아올 때면 하늘을 올려다본다. 은하수는 여전히 쏟아질 것처럼 반짝였고 어쩌다 별똥별 하나쯤 볼 법도 했지만 단 한 번도 별똥별을 보지 못했다.

*

이번에 찾아온 유성우는 33년을 주기로 태양을 도는 템플 터틀 혜성의 잔해들이다. 11월의 유성우는 과거에도 33년을 주기로 나타났었다. 어느 해인가는 1시간에 만 개 이상의 유성을 볼 수 있었다는 기록도 있다. 가장 최근의 화려했던 유성우는 2001년 11월 18일 밤에 있었다. 시간당 수천 개의 유성우가 관찰되기도 했다. 이번에 내리는 유성우는 템플 터틀 혜성이 1499년에 태양 근처를 지나가면서 남긴 먼지 띠와 지구가 만나면서 발생하는 현상이다. 유성은 우주 공간의 먼지, 티끌, 암석 등의 작은 물체가 지구 옆을 지날 때 지구의 중력에 끌려 들어오면서 공기와 마찰을 일으켜 빛을 내는 것이다. 대게 90Km 상공에서 빛을 내기 시작하며 속도는 초속 11~72Km. 빛을 발하는 시간은 수십 분의 1초에서 수 초 가량이다. 이 때 타버리고 남은 일부가 땅에 떨어지면 운석이 된다. 혜성의 잔해가 유성이 되는 경우에는 혜성이 지나간 뒤부터 몇 년 동안 계속 떨어지기도 한다. 템플 터틀 혜성의 잔해는 33년마다 태양에 접근하고 그 뒤로 몇 년간 계속 떨어진다. 대게 유성을 관측하기에 좋은 시간은 새벽부터 해뜨기 직전까지인데 이는 지구의 공전 때문에 저녁 무렵에는 유성체가 지구 공전속도인 30km보다 빨리 지구를 쫓아와야 하지만 새벽녘에는 지구가 지나가는 공간에 머물러 있기만 해도 지구와 충돌해 유성이 되기 때문이다.

*

사람들은 1499년의 흔적을 쫓고 있었다. 500년 전에 혜성이 뿌리고 간 잔해를 보기 위해 천문대로, 옥상으로, 창가로 몰려들고 있었다. 혜성에서 떨어져 나온 조각들은 갈 곳을 잃고 어두운 밤하늘을 떠돌다가 지구를 만나 맹목적으로 달려들어 순간을 태우고 사라져 가는 것이다. 그 순간을, 500년이 넘도록 사라지기 위해, 죽기위해 기다렸던 잔해들이 사라지는 순간을 사람들은 환호성을 지르며 구경하기 위해 지금 이렇게 수군거리고 있는 거였다.
삼십 몇 년이 지나고 나면 사람들은 또다시 유성우를 구경하기 위해 천문대를 찾아 나서고, 옥상에서 맥주를 마시며 목이 아프게 고개를 꺾고 어두운 밤하늘을 보고 있을 거라는 생각을 하니 우스워졌다. 앞으로 다가올 삼십 몇 년이 지나간 500년보다 길어보였다. 어쩌면 영영 다가오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삼십 몇 년이라니, 끔찍한 시간이다.

“같이……. 같이 볼래요?”
“…….”
“그냥 같은 시간에 같은 하늘을 보자는 것뿐이에요.”
“…….”
“그래, 싫으면 그만둬요…….”
“…….”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가슴이 아팠다. 나는 지금 이곳에 있고, 그는 지금 그곳에 있다. 같은 시간을 흐르고 있지만 도저히 만날 수 없었다. 영원히 만나지 않는 평행선. 만나지 못하는 게 아니라 만나지 않는 거라는 사실이 더 슬퍼졌다.
“미안해요. 괜히 전화해서.”
“…….”
“잘 자요.”
“…….”
한 번, 단 한 번의 교차를 위해 평생을 달리고 그 짧은 순간의 마주침만을 간직한 채 영원히 멀어지는 것보다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늘 같은 거리로 다가오지도 않고 멀어지지도 않는 평행선이 낫다고 했던가, 차라리 한 번만이라도 마주치고 그 순간의 기억으로 평생을 살아가는 게 더 낫다고 했던가. 어쩌면 뫼비우스의 띠처럼 영원히 서로의 뒤만 쫓는 건지도 모른다.
전화를 끊고 옥상에 올라갔다. 예전엔 찾을 수 있었던 북두칠성도 찾을 수 없었다. 그저 모든 별들은 멀리서 깜빡이고 있을 뿐이었다. 목이 아프도록 고개를 꺾었다. 뭔가 뭉클한 것이 목젖을 타고 흘렀다. 깜빡이던 별들은 흐릿해지고 마치 별똥별처럼 조금씩 움직이기 시작했다. 작고 서글픈 별들이 내 눈 위로, 볼을 타고 흐르는 눈물 속으로 쏟아져 내렸다.

1499년에 태양에 다가왔던 혜성 템플 터틀의 잔해들은 2003년이 되어서야 비로소 반짝이는 별똥별이 되어 지구로 떨어져 내렸다. 아니, 떨어져 내렸다고 한다. 사람들은 초겨울 밤을 꼬박 새웠지만 유성우는커녕 별똥별도 못 봤다며 불평들을 했고 언제 그랬냐는 듯이 출근을 서둘렀다. 2003년 11월의 어느 아침은 그렇게 시작됐다. 밤사이 어딘가 에선 수많은 영혼들이 사라졌고 그 영혼들은 별똥별이 되어 사라져갔다. 사람들은 유성우 따윈 잊어버렸다. 순간을 타오르기 위해 혜성의 잔해들은 500년이 넘는 시간을 기다렸고 빤짝거리며 사라져갔다. 똑같은 아침이 시작됐고 똑같은 하루가 흐르기 시작했다.

가지고 싶은 것들은 언제나, 너무 멀리에 있다.

—–

2003년, 오래된 기억.

Continue Reading

사랑을 잃고 나는 쓰네

대학에 입학해서 기숙사 생활을 했다. 3인1실 방에 나와 같은 과 동기가 한 명, 다른 과 신입생이 한 명이었다. 어느 주말로 기억난다. 셋이 기숙사 앞 잔디밭에 앉아서 술을 마시다 다른 과 친구가 그런 말을 했다. ‘달도 밝고 기분도 좋으니까 니가 시 한 수 읊어봐라’라고.
나는 정색을 하고 어떻게 이런 자리에서 시를 읊냐고 대꾸했다. 시가 이런 술자리에서 아무렇게나 대할 수 있는 게 아니라고 생각했었다, 그시절엔. 그 친구는 ‘야, 옛날 선비들이 달밤에 술 마시면서 시조 읊고 그런 게 이런 거지. 원래 이렇게 앉아서 시도 읊고 그래야지. 니가 안 하면 내가 하지뭐.’라고 웃으며 말했다. 그 친구가 결국 시를 읊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아마도 이자람밴드의 ‘빈집’을 듣자마자 그 순간이 떠올랐다. 대학신입생시절의 어느 주말 밤, 기숙사 잔디밭에 앉아서 얼굴을 붉혔던 그 순간이.
 
이틀동안 출장을 다녀오는 길이었다. 일행들을 내려주고 어둡고 습한 강변북로를 달렸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자면 내가 운전하는 차는 사람이 걷는 것보다 조금 빠르게 움직였다. 작은 빗방울이 떨어졌지만 창문을 열었다. 에어컨을 끈 실내는 습하고 끈적거렸다. 에피톤프로젝트의 노래를 듣고, 또 들었다. 그러다 울컥 짜증이 났다. 이제 이 지긋지긋한 노래들은 듣고 싶지 않아, 라고 소리를 질었다.
 
여름이면 에피톤프로젝트의 노래를 들었다. 새벽까지 깨어있다 무작정 자전거를 끌고 나갔다. 땀범벅이 되어서 돌아와 욕조에 누워 에피톤프로젝트의 노래를 무한반복하면서 들었다. 어쩌다 제주에 갈 때도 늘 같은 노래를 들었다. 나중엔 내가 왜 이 노래를 듣기 시작했는지 생각나지 않았다. 아니, 이건 거짓말이다.
 
에피톤프로젝트의 노래를, 그래도 끝까지 듣고 ‘빈집’을 들었다. 듣고, 듣고, 또 들었다. 그리고 조용히 따라불렀다. 어두운 하늘, 습한 공기, 붉은 등을 밝히고 꼬리를 물고 서 있는 차들, 가끔씩 떨어지는 빗방울, 여전히 울리지 않는 전화기.
 
비포장도로를 십 분이 넘도록 올라간 곳에 있는 펜션의 밤은 서늘했다. 권하는 술을 마다하고 자리에 누웠다. 깜빡 잠이 들었다 깼다. 열두시 반. 옆에 잠든 사람이 뒤척거리는 바람에 깼다. 세시. 일행들이 웅성거리는 소리에 깼다. 네시 반. 그렇게 여러번 잠에서 깰 때마다 핸드폰을 들여다봤다. 번쩍거리며 시간만 밝히고 어두워졌다.
 
이슬비를 맞으며 숲을 헤매고 다녔고, 졸음을 참고 운전을 했다. 긴 하루였다. 그리고 ‘빈집’을 중얼거리는 밤이다.

 

Continue Reading

그저 그런, 그렇지만 울고 싶은 날들

예전에 힘든 시기를 보내던 후배에게 해준 충고가 있다.

‘좋은 일이 계속되면 그건 서로 인과관계가 있는 거야. 작은 좋은 일이 큰 좋은 일을 불러오고, 그것들이 모여서 더 크고 좋은 일이 되는 거겠지. 그렇지만 나쁜 일은 서로 아무런 연관이 없어. 어제 겪은 나쁜 일은 그 일로 끝이고 만약 오늘 더 나쁜 일을 겪었다면 그건 그대로 하나의 나쁜 일일 뿐이야. 그런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반대로 생각을 하지. 좋은 일이 계속되면 그저 그런가보다 하고 나쁜 일이 계속되면 아, 나는 왜 이럴까 어쩌자고 계속 이런 일만 벌어지는 걸까라고 생각하면서 힘들어 하지.’라고.

글쎄, 적어도 나는 저렇게 생각하려고 노력했었다. 물론, 생각처럼 쉬운 일은 아니었지만.

보름 사이에 차사고가 두 번이 벌어졌다. 한 번은 상대방 과실, 한 번은 내 과실이었다. 내 차가 공업사에 들어가 있는 동안 빌린 아버지 차도 공업사에 들어갔다. 어제 내 차를 찾아왔고, 아버지 차는 다음주나 되어야 찾을 수 있다. 통장 잔고 때문에 고생을 했고, 출장은 취소 됐다. 몸은 좋지 않고, 밤이면 악몽에 시달린다.

좋지 않은 일은, 그저 각각 상관 없는 일로 봐야지, 라고 스스로에게 중얼거린다. 그렇지만 그냥 길바닥 위에서 엉엉 울어버리고 싶은 날들이다.

Continue Reading

새로운 절반, 혹은 끝나버린.

주말 내내 이 노래를 반복해서 들으며 보냈다. 새로운 한 주일이 시작되고, 비가 내렸다. 폭우가 쏟아지는 길을 달리면서도 내내 이 노래를 들었다. 올 장마에는 Uriah Heep의 Rain이 아닌 이 노래로 버틸 수 있으리라.

6월이 지나갔다. 한 달이 지나갔고, 반 년이 지났다. 6월의 마지막 날이자 전반기 마지막 날엔 미친듯이 술을 마셨다. 기억을 잃고 작업실 바닥에 누워 잠이 들었다. 빗소리를 들으며 깼다. 장마가 시작되고 있었다. 그 전날엔 하루종일 땡볕에서 촬영을 했다. 모델들에게 한복을 입히고 바위 위에서, 나무 아래서, 해가 지는 정자에서 순간을 담았다. 오전 8시부터 시작한 하루가 밤 9시 되어서 끝났다. 일을 마치고 식당으로 가던 길에 사고가 났다. 내가 운전한 차의 조수석 앞부터 뒷범퍼까지 전부 긁히고 상했다. 차를 바꾸고 처음 겪는 사고였다.

새 달이 시작됐다. 달라진 건 없다. 늘 그랬듯이. 폭우가 쏟아졌고, 일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 한강은 넘실거렸다. 빗소리를 들으며 잠에서 깨고, 눈을 뜨자마자 전화기부터 확인했다. 울리지 않는 전화기를 들고 멍하니 앉아있는 시간이 있었고, 무시무시한 소리와 함께 재난알림 문자가 왔다. 카드결제일을 알리는 문자가 쏟아졌고, 입금되지 않는 통장에서 깡통소리가 요란하게 울리는 환청을 들었다.

친구와 통화를 하며 말했다. ‘살아남자, 우리’라고.

살아남자, 우리.

표어처럼 소리내어 읽어본다. 어떻게 사느냐,는 역시 사치였다. 살아남는 게 우선이었다, 내겐. 살아남아야 어떻게 살지 고민을 할 수 있겠지.

며칠째 떠나지 않는 우울감이 어디에서 온 건지, 오늘은 가만히 생각을 해봐야겠다. 깡통소리를 내는 통장 때문인지, 울리지 않는 전화기 때문인지, 아니면 그저 장마와 함께 들이닥친 습기 때문인지. 그러니 우리,

살아남자.

Continue Reading

반백수 큰아들입니다, 저는.

몇년 전, 공항에 자주 갈 일이 있을 때면 늘 마이 앤트 메리의 ‘공항 가는 길’을 들었다. 새벽에 일어나 꾸역꾸역 짐가방을 들고 집을 나서면서 무슨 의식처럼 그 노래를 들었다. 문득 ‘장례식장 가는 길’이라는 노래는 어디 없나 찾아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올해 들어 벌써 몇 번째인지 모르겠다. 이젠 엄마가 보낸 ‘괜찮을 때 전화 좀 해라’라는 문자를 보기만 해도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다. 지난 토요일, 화성에서 촬영을 하고 있을 때 문자가 왔다. 잠깐 밖으로 나와 엄마에게 전화를 했다.

‘그래, 어디니? 응, 일하고 있다고. 그래, 근데 어쩌니…… 또 초상이 났다. 그래, 오늘은 안 된다고? 그럼 내일 가야겠구나. 그래, 어쩌겠니. 니가 와야지.’

일요일 오후, 집근처에 사시는 친척분을 같이 모시고 한 시간쯤 운전을 해서 장례식장에 도착했다. 조문을 하고, 길에서 마주쳤다면 얼굴도 못 알아봤을 먼 친척들과 인사를 나누고 자리에 앉았다. 다들 아버지와 인사를 나눈 후엔 나를 돌아보며 한 마디씩 한다. ‘아, 얘가 그 의사선생님?’ ‘아, 이 아들이 그 분당에 있다는 의사?’ ‘얘가 이번에 박사됐다는 그 아들인가?’

그럴 때마다 아버지는 ‘아, 그건 막내고. 얘는 큰아들.’이라고 손짓을 하셨다. 그 뒤에서 나는 어정쩡한 얼굴로 고개를 숙였고.

자리를 잡고 앉았다. 육개장 국물을 마시며 젓가락으로 밥을 먹는 내내 속이 편치 않았다. 앞에 앉은 먼친척이 드디어, 내게 물었다. ‘그럼 이 조카는 무슨 일을 하나?’ 그러자 기다렸다는듯이 아버지가 말씀하셨다. ‘얘는 사진을 해요.’

‘사진을 해요’라는 말이 낯설게 들렸다. 난 다시 멋쩍게 웃으며 머리를 긁적거렸다. ‘예, 뭐……’

옆테이블에 앉아있던 다른 친척이 다시 물었다. ‘오, 사진? 그럼 무슨 사진을 찍어요?’ 이번에도 아버지가 기다렸다는듯이 대꾸하셨다. ‘그런데, 예술사진이 아니고 그냥 상업사진을 해. 돈 되는 사진 찍는 거지 뭐.’

아이고 아버지. 상업사진이라니요. 어디 쥐구멍이라도 있으면 숨고 싶었다.

‘오, 상업사진이면 무슨 스튜디오 같은 거?’ ‘아이고 아닙니다. 그냥 되는대로 이것저것 찍어요. 무슨 스튜디오가 있거나 그런 것도 아니구요. 그냥 뭐……’ 말꼬리를 흐리다 아버지쪽으로 돌아서 짐짓 웃으며 말을 했다. ‘아버지, 그럼 저 이제부터 예술사진 해도 돼요? 그럴까요?’ 웃는 것도 아니고 찡그린 것도 아닌 표정을 짓는 아버지 앞에 앉아계시던 엄마가 눈을 흘기며 말씀하셨다.

‘무슨 소리야. 돈 되는 일을 해야지. 돈 더 벌어야해.’

예, 그럼요. 돈 벌어야지요.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그런 생각을 했다. 이제 집안 모임에 갈 때는 등 뒤에 ‘의사아들 아님. 반백수 큰아들임.’이라고 써붙이고 가야겠다고. 이런 이야기를 했더니 친구녀석은, ‘그러지말고 등뒤에 여권사진, 증명사진 찍습니다 라고 써붙여’라고 하더라. 그러게, 정말 그럴까봐.

이래저래 복잡한 생각이 든다. 부끄러움과 죄송한 마음이 어지럽다. 사진을 ‘한다’라는 말을 할 자격이 되는지, 돈을 제대로 벌고 있는지, 아니 제대로 살고 있는지.

Continue Reading

지나간 날들

출장 다녀온 이야기를 하며 친구와 술을 마셨다. 제법 마셨을 때 생각이 났다. 동창의 아버지가 돌아가셔서 가봐야한다는 사실이. 술에 취해 비틀거리며 버스에 올랐다. 몇 통의 전화를 받았고, 겨우 정신을 차리고 버스에서 내렸다.

상주인 친구와 인사를 나눴고, 어색하게 앉아서 다시 몇 잔의 술을 마셨다. 친구와 함께 집으로 돌아오는 길엔 고개를 꺾고 잠이 들었다. 그 정신에도 거실에 술판을 벌였다. 싱글몰트 위스키를 따르고, 쥐포를 굽고, 소세지를 데쳤다. 새벽이 되어서야 겨우 침대에 누웠다.

며칠째 온통 한 가지 생각이다. 술에 취해서, 작업을 하면서, 잠들기 전까지, 눈을 뜨자마자.

일본 출장 작업을 마무리하면 하루나 이틀쯤 바람을 쐬러 다녀와야겠다. 라고 적고보니 다음주말엔 일본에 가는구나. 그래도 이번엔 작은 카메라 하나만 들고 가도 되니 다행이다.

여름이 시작됐다. 피곤해서 머리가 깨질 것 같은데도 잠이 오질 않는다. 창문을 열고 멀리에서 지나가는 차들의 소리를 듣는다. 꿈 없는 잠, 고요한 밤. 요즘 내가 간절히 원하는 것들.

Continue Reading

어느 밤

반짝거리며, 떨리던 밤이 지났다.

서울을 두 번 가로질렀다. 더위가 기승을 부렸다. 내 플레이리스트엔 낯선 노래들이 채워졌다. 같은 노래들을 몇 번쯤 들었을까. 먼 곳으로 가는 버스를 보고 돌아섰다. 다시, 어둠이 찾아왔다. 불이 꺼진 거실 소파에 누웠다. 빈집, 늘 그랬던 곳.

낯선 노래들 뒤에 몇 곡의 노래를 덧붙인다. 몇년 만에 에피톤프로젝트를 다시 듣는다. 어두운 거실, 지친 몸 위로 노래가 흐른다. 싱크대엔 맥주가 반쯤 남은 컵과 올해 첫 아이스라떼가 녹아 있는 잔, 눅눅해진 감자칩이 배경처럼 녹아든다. 낯선 감정이, 낯선 시간처럼 찾아온다. 긴 하루가 지난다.

Continue Reading

새벽

집 식탁 위에 두고온, 읽다만 책의 결말이 궁금해진 새벽이다. 다다미방에 앉아 저녁을 먹으며 맥주를 마셨다. 작은 잔이 연신 비워졌고 다시 채워졌다. 아홉시쯤 식사자리가 파하고 혼자 숙소를 나섰다.

작은 온천마을은 한밤중이었다. 불이 꺼진 골목을 걷고 들어왔다. 방 한쪽에 깔린 이부자리 위에 엎드려 사진들을 보다 잠이 들었다. 창 아래에서 들리는 물소리에 정신이 들었다. 자정을 십 분 남겨두고 있었다. 주섬주섬 수건을 챙겨 온천으로 올라갔다. 불이 꺼진 아담한 욕탕에 들어섰다. 창밖은 검은 어둠이 가득했다. 아무도 없는 욕탕에 한참을 멍하니 앉아있었다.

다시 방에 들어선다. 물소리는 여전하다. 숙소 앞으로 흐르는 개울소리다. 집에 두고온, 이제 막 절정을 향해 달려가는 소설의 결말이 문득 궁금해졌다. 짐가방에서 다른 책을 꺼낸다. 아이폰으로 오지은의 노래를 작게 튼다. 밤은 깊다.

Continue Reading

올해 첫 헤나

다시, 날짜가 바뀌고 나서 쓰는 어제의 일기.

예약해뒀던 샵에 가서 헤나를 했다. 늘 연장을 드는 오른쪽 손등에서부터 손목 위까지, 왼쪽 손엔 서비스(!)로 포인트를 줬다. 한 시간쯤 가만히 앉아서 헤나를 그리는 아티스트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실은 이거 그리고 가서 작업을 좀 해야 해서…’

‘아, 괜찮아요. 한두시간 후면 물로 씻어내시면 돼요.’

‘그런데, 오늘이 할아버지 기일이라 저녁에 식구들이 전부 모여서…’

‘헉, 어떡해요? 그 때쯤이면 막 발색이 될 텐데!’

‘아, 괜찮아요. 지난번엔 헤나 하고 장례식장에도 다녀왔는걸요 뭐.’

‘……’

지난번엔 헤나를 한 다음날이던가, 아버지를 모시고 상갓집에 다녀왔다. 최대한 공손하게 손을 모으고 상주와 맞절을 하고 저녁을 먹으러 앉은 자리에서 아버지가 놀라서 물으셨다.

‘니 손은 왜 그러냐?’

‘아, 예… 이거 지워지는 거에요. 아는 분이 그려주셨어요… 근데 아버지 식사 하셔야죠…’ 어쩌구저쩌구.

오늘도 본가에 가자마자 엄마가 소리를 지르셨다.

‘야! 손이 왜 그래?’

‘아, 이거 지워지는 거에요. 걱정마세요.’

‘맞다, 엄마가 미리 전화할 걸. 어떡하냐 이따 아버지 모시고 초상집에 다녀와야하는데.’

지난달에 초상집에 다섯번 넘게 다니면서 숫자 세는 걸 포기했다. 엄마와 마주보며 쓴웃음을 지었다. 고개를 숙여 손을 보니 이제 막 푸른 색이 예쁘게 올라오고 있었다. ‘아, 오늘도 최대한 공손하게 두 손을 잘 모으고 있어야겠구나.’

*

올해 들어 상갓집에 다녀온 게 열 번이 훌쩍 넘었다. 친구 부모님이 돌아가셨고, 동네 아주머니가 돌아가셨다. 또 누가 돌아가셨더라. 친척분들이 돌아가셨고, 집안 어르신이 돌아가셨다. 가까운 이웃 아저씨의 의절한 아버지가 돌아가셨고, 또 기억나지 않는 누군가가 돌아가셨다. 시끌벅적한 장례식장에서 밤을 새우기도 했고, 승화원에서 고인의 유골을 기다리기도 했다. 엄마를 모시고 돌아오는 길에 끝나지 않을 것 같은 옛날 이야기를 들었고, 별로 재미도 없는 이야기를 나누며 아버지를 모시고 다녔다.

동네 아주머니가 돌아가셨을 때, 조문을 하고 돌아나오는 길에 아버지가 손가락으로 뭔가를 세셨다. ‘이제 우리 동네에 나보다 나이 많은 사람이…’하며 손을 꼽는 아버지의 거친 손가락이 몇 개나 접혔었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

할아버지의 기일, 아버지가 아주 어렸을 때 이북에서 돌아가셨다고 들었다. 엄마는 얼굴도 못 본 시아버지의 제사를 챙겼다. 할머니가 돌아가신 후로 일 년에 두 번 제삿날을 챙겼다. 몇 년 전까지는 이런저런 음식들을 준비하고 제삿상을 차렸다. 할머니가 살아계실 땐, 사촌들까지 모여서 제사를 지냈다. 몇 년 전부턴 기일에 식구들이 모여 저녁식사를 같이 한다. 음식준비도 하지 말라고 말씀드렸다. 온 식구가 모여서 돌아가신 분 기억하면서 기도를 하고 식사를 같이 한다. 그리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눈다. 이젠 조카들의 어리광을 보는 재미에 아버지의 굳은 얼굴에도 미소가 번진다. 살아있는 사람들이 좋은 마음으로 기억하는 것, 그게 잘 차려진 제삿상보다 낫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엄마는 그동안 이미 차고 넘치도록 치뤄냈다.

*

주말엔 제주에서 촬영이 잡혀있다. 오랜만에 제주에 내려갔으니 며칠 묵을 예정이었다. 그래서 돌아오는 항공권은 예매를 하지 않았다. 그런데 오늘 아침, 갑작스레 일본 출장이 잡혔다. 부랴부랴 일요일 밤에 올라오는 비행기편을 겨우 예매했다. 일요일 밤에 올라와서 월요일 새벽에 출국, 화요일 밤에 귀국하는 스케줄. 생각만으로도 피곤이 밀려오는 일정이지만, 그저 고맙습니다 하고 일을 받았다. 아무리 작은 일이라도 연락이 오는 게 얼마나 고마운 일인지 모른다. 늘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다. 물론, 몸이 힘든 건 다른 문제고.

*

그러니, 오늘은 얼른 자자. 그리고 내일은 제주행!

그나저나 피부관리 좀 해야겠네…

Continue Reading

6월, 부끄러운 날들.

P6020219

6월이 시작됐다, 라고 적는 6월의 둘쨋날 새벽이다.

날짜가 바뀌고, 달이 바뀌는 게 뭐 대단한 일이겠냐만 유독 이번 달이 시작되는 날은 남달랐다. 여기저기서 달이 바뀌었다는 사실을 알려주려고 안달을 해댔고, 더워진 날씨 때문에 이제 본격적인 여름이 시작됐다는 걸 온몸으로 느꼈다.

오후엔 땀을 뻘뻘 흘리면서 촬영을 했고, 집에 돌아오는 길에 액자공장에 들러 주문한 액자를 가져왔다. 5×7 사이즈 액자 50개! 사람좋아 보이는 공장 사장님이 따라나와 비타민 음료를 하나 건네주셨다. 홀짝홀짝 마시며 돌아오는 길은 부자가 된 기분이었다, 라면 거짓말이고 부담이 좀 됐다. 프린터를 장만하고 이주일이 넘도록 포장을 풀지 않았던 것과 같은 부담감이다. 제대로 된 프린터를 들인다는 건, 예전으로 보자면 암실을 하나 꾸리는 것과 같은 일이다. 거기에 빈 액자가 한 상자. 무슨 일을 하느냐는 질문을 받을 때마다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사진을 찍는데요…’라고 하는 처지에 프린터에 액자라니…

저녁엔 시청 공보과에 있는 분과 저녁식사를 했다. 김포시 공식 인스타그램에 올라오는 사진들을 보고 담당하는 분을 직접 만나고 싶다는 말에 친구가 주선한 자리였다. 두 시간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주로 듣는 쪽이었지만 자리를 파할 땐 대단한 분이라는 생각과 부끄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새벽 세 시반에 출근해서 장비를 메고 문수산에 올라 해 뜨는 걸 찍고, 사무실에서 장비 충전을 하고 점심 후에 다시 촬영을 하러 나가서 여덟 시는 돼야 퇴근하는 일상이란다. 그런데도 시간이 너무 빨리 간다고, 너무 재미있다는 말씀을 듣고 내 자신을 돌아봤다. 요즘은 무슨 일을 하느냐는 질문에 ‘일이 없으면 그냥 집에서 책이나 보고 있습니다’라고 말한 내 자신이 부끄러웠다. 아, 책만 읽는 건 아니고 술을 마십니다, 라고 할 걸 그랬나…

지난 추석에 찍은 가족사진을 뽑는다. 며칠 전, 누나 가게에서 찍은 사진과 친구 얼굴을 찍은 사진도 뽑는다. 하룻밤 방바닥에 재운 사진을 내일이면 액자에 담아야지. 하루에 한 장이라도 사진을 찍어야지. 늘 하는 부질없는 다짐.

Continue Reading
1 2 3 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