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꾸는 섬 공작소의 모든 글

모임 별, 고양이를 부탁해.

일산에 있는 오피스텔에 살 때였다, 영화 ‘고양이를 부탁해’를 본 것은.

학교에 나가며 시간만 죽이고 있는 나를 눈엣가시처럼 여긴 아버지가 집에서  내쫒았다. 월세로 방을 얻고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낮이면 증권사를 다니던 선배와 술을 마셨고, 술자리는 종종 다음날 아침까지 이어졌다.

침대를 하나 샀다. 때론 작업대로, 때론 식탁으로, 때론 옷걸이로 쓸 테이블을 하나 맞췄다. 일주일에 몇 편씩 영화를 봤고, 헌책방을 뒤지고 다녔다. 수동카메라로 사진을 찍었고, 흑백필름을 현상하고 인화했다. 영화관에서 일하는 친구에게서 받은 포스터를 벽에 붙였고, 고양이를 두 마리 품었다.

매주 영화를 보고 낙서처럼 끄적이던 시절이었다. ‘고양이를 부탁해’를 몇 번이고 본 기억이 난다. 그리고 어렵게 OST를 구했다. 아니, 기억이 정확하지 않다. ‘모임 별’의 CD를 신촌의 향음악사에서 산 게 먼저인지, ‘고양이를 부탁해’를 본 게 먼저인지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지금도 기억하는 건 ‘모임 별’의 그 CD다. 비닐에 담겨있던, 구워진 은색 공CD.
그 노래들을 꽤 오래 들었다. 나중에서야 그 CD가 귀한 물건이란 걸 알게 됐다. 그렇지만 내게는 그저 이메일 주소가 긴 누군가가 집에서 만든 음악, 정도로만 기억됐다.

추라우미 수족관을 처음 알게 된 건, 몇 년이 지난 어느 잠들지 못하는 밤이었다. 인터넷에서 커다란 고래상어가 느리게 헤엄치는 파란 수조를 보고 한동안 숨을 쉴 수가 없었다. 불을 끄고 앉아서 멍하니 그 화면을 계속해서 돌려봤다.
오키나와는, 너무나 먼 곳이었다. 내게.
내가 갈 수 있을지 도무지 알 수 없었다. 모든 것이 막막하던 시절이었으니까.

2012년, 오키나와에 갔다.
바쁜 일정이었지만 추라우미 수족관 메인수조 앞에 한동안 머물렀다. 사진을 몇 컷 찍었고 긴 영상을 촬영했다. 오로지 나를 위한 영상이었다. 다시 잠들지 못하는 밤이 오면 불을 끄고 조용히 보고 싶었다. 밤새도록 돌려가면서.
그 후로 오키나와에 몇 번을 더 다녀왔다. 때론 일을 하러, 때론 친구들과 여행으로. 그렇지만 더이상 추라우미 수족관 메인수조 앞에서 발걸음을 멈추진 않았다.

몇 년전, 제주에 생긴 수족관에 다녀왔다. 추라우미 수족관 보다 조금 더 크다는 수조가 있었다. 며칠 전까지 그 안을 헤엄치고 있었다던 고래상어를 제주 앞바다에 풀어줬다는 홍보관계자의 얘기를 건성으로 들었다. 촬영을 마치고 수족관 옆을 돌아 나오는데 ‘모임 별’의 노래가 흘러나왔다. 관객들의 소음 속에서 겨우 들리는 정도의 소리였지만, 나는 그자리에 멈춰섰다.

‘모임 별’의 노래가, 그 은색 CD가, 불이 꺼진 오피스텔에서 보던 ‘고양이를 부탁해’가 기억났다.

그 이후로 작은 소원이 하나 생겼다.
오키나와에 간다면 ‘모임 별’의 노래를 들으면서 고래상어가 느리게 헤엄치는 그 수조 앞에서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앉아서 시간을 보내고 싶다는.
하루쯤 그렇게, 불 꺼진 방에서 숨죽여 모니터를 바라보던 그 시절의 나처럼.
그러니 당신, 오키나와에 간다면 푸른 수족관 앞에서 하루쯤 시간을 보내시길.

그렇지만
내가 기억하는 ‘모임 별’의 노래는 사실,
지금 듣는 이 노래보다

슬펐다.

새벽

조카 선물로 줄 도장을 파고 집에 들어오니 새벽 한 시 반.

낮에 떠오른 생각을 종이에 적어볼까 했지만 그러면 새벽이 될 것 같아서 그만뒀다.
고양이들이랑 잠깐 놀아주고, 자기 전에 그래도 글씨 좀 써볼까하고 엎드려서 펜을 잡았는데…

새벽 네 시가 됐다.
그리고 지금도 계속 끄적거린다.

창밖에선 길고양이가 구슬프게 운다. 비는 멈췄다. 내 옆에선 고양이들이 골골거리며 잔다.

밤, 여름 장마.

비오는 밤

비오는 밤

비오는 밤

비오는 밤

비오는 밤

제주의 밤을 생각합니다.
빗방울이 떨어지는 바다와, 멀리 흐린 그 산을.
여기는,
내가 있는 이곳은 비가 내립니다.
안개 같은 비와, 습기를 머금은 바람,
비를 밟고 달리는 자동차 소리가 가까이에 있는
새벽입니다.

아니, 나는
부산의 밤을 생각합니다.
바다와 시끄럽고 환한 거리,
비릿한 생선 냄새를.

어쩌면 나는,
낯선 타국의 밤을 생각하는지도 모릅니다.
정갈하게 다림질이 된 하얀 시트가 깔린 침대와
시원한 맥주, 두런두런 들려오는 알아들을 수 없는 낯선 언어들을.

이 비가 그치면 나는,
제주에 가야겠습니다.
습한 바다와 뜨거운 태양, 은은한 커피향을 맡으러.
아니 나는,
부산에 가렵니다.
긴 다리를 보며 맥주를 마셔야겠습니다.
어쩌면 나는, 이 비가 그치면
커다란, 그렇지만 비어 있는 가방을 끌며
낯선 나라에 갈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는 사람이 없는,
말이 통하지 않는, 그래서
내가 울어도 누구하나 신경쓰지 않을 그런 곳에 말입니다.

그러니 당신,
제주에서, 부산에서, 그리고 머언 남국 어디에서
나를 잊지 말아요, 부디.

어느 오후

오늘 세 잔째 커피 마시는 중.
파주에서 한 잔, 여의도에서 한 잔, 김포에서 한 잔.

번역이 엉망인 책을 읽느라 머리가 아프다. 그나마 내가 읽고 싶어서 읽는 책이니 다행이지 만약에 일이나 공부 때문에 읽어야했다면 얼마나 힘들었을까.

타국을 떠도는 사람들, 그러니까 고향인 남미를 떠나 유럽을 방랑하는 사람들에 관한 짧은 소설들을 읽고있자니, 여행을 떠나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가만, 여행을 떠나고 싶다는 생각이야 늘 했던 거잖아!

갈 수 있는데 안 가는 것과 가고 싶은데 못 가는 것 사이에서 줄타기를 하고있는 요즘이다.

가끔, 머리가 어지러워서 비틀거렸던 캄보디아 앙코르왓과 천둥소리에 놀라서 깼던 파타야의 새벽이 떠오른다. 여전히 여행자들은 땡볕에 비틀거리고 갑자기 쏟아지는 비를 보며 맥주를 마시고 있겠지, 지금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