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꾸는 섬 공작소의 모든 글

새벽

조카 선물로 줄 도장을 파고 집에 들어오니 새벽 한 시 반.

낮에 떠오른 생각을 종이에 적어볼까 했지만 그러면 새벽이 될 것 같아서 그만뒀다.
고양이들이랑 잠깐 놀아주고, 자기 전에 그래도 글씨 좀 써볼까하고 엎드려서 펜을 잡았는데…

새벽 네 시가 됐다.
그리고 지금도 계속 끄적거린다.

창밖에선 길고양이가 구슬프게 운다. 비는 멈췄다. 내 옆에선 고양이들이 골골거리며 잔다.

밤, 여름 장마.

비오는 밤

비오는 밤

비오는 밤

비오는 밤

비오는 밤

제주의 밤을 생각합니다.
빗방울이 떨어지는 바다와, 멀리 흐린 그 산을.
여기는,
내가 있는 이곳은 비가 내립니다.
안개 같은 비와, 습기를 머금은 바람,
비를 밟고 달리는 자동차 소리가 가까이에 있는
새벽입니다.

아니, 나는
부산의 밤을 생각합니다.
바다와 시끄럽고 환한 거리,
비릿한 생선 냄새를.

어쩌면 나는,
낯선 타국의 밤을 생각하는지도 모릅니다.
정갈하게 다림질이 된 하얀 시트가 깔린 침대와
시원한 맥주, 두런두런 들려오는 알아들을 수 없는 낯선 언어들을.

이 비가 그치면 나는,
제주에 가야겠습니다.
습한 바다와 뜨거운 태양, 은은한 커피향을 맡으러.
아니 나는,
부산에 가렵니다.
긴 다리를 보며 맥주를 마셔야겠습니다.
어쩌면 나는, 이 비가 그치면
커다란, 그렇지만 비어 있는 가방을 끌며
낯선 나라에 갈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는 사람이 없는,
말이 통하지 않는, 그래서
내가 울어도 누구하나 신경쓰지 않을 그런 곳에 말입니다.

그러니 당신,
제주에서, 부산에서, 그리고 머언 남국 어디에서
나를 잊지 말아요, 부디.

어느 오후

오늘 세 잔째 커피 마시는 중.
파주에서 한 잔, 여의도에서 한 잔, 김포에서 한 잔.

번역이 엉망인 책을 읽느라 머리가 아프다. 그나마 내가 읽고 싶어서 읽는 책이니 다행이지 만약에 일이나 공부 때문에 읽어야했다면 얼마나 힘들었을까.

타국을 떠도는 사람들, 그러니까 고향인 남미를 떠나 유럽을 방랑하는 사람들에 관한 짧은 소설들을 읽고있자니, 여행을 떠나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가만, 여행을 떠나고 싶다는 생각이야 늘 했던 거잖아!

갈 수 있는데 안 가는 것과 가고 싶은데 못 가는 것 사이에서 줄타기를 하고있는 요즘이다.

가끔, 머리가 어지러워서 비틀거렸던 캄보디아 앙코르왓과 천둥소리에 놀라서 깼던 파타야의 새벽이 떠오른다. 여전히 여행자들은 땡볕에 비틀거리고 갑자기 쏟아지는 비를 보며 맥주를 마시고 있겠지, 지금도?

토요일 오후

토요일 오후, 새로 지은 성당에서 드리는 혼배미사를 촬영하느라 온몸이 땀에 젖었다. 턱시도를 입은 신랑은 나보다 더 땀을 흘렸고, 폐백을 하기 위해서 한복을 갈아입고는 아예 눈물처럼 땀을 흘렸다.

그 시각, 친척동생은 파주에서 결혼식을 올리고 있었다. 목구멍이 포도청이라 일 때문에 직접 가지는 못하고 운전을 하면서 간단한 전화통화를 했다.

“어때, 좋은 꿈 꿨어?”
“에이, 형 아시잖아요.”
“좋아?”
“아니 뭐, 형도 아시면서.”

전화를 끊고 차들이 늘어선 외곽순환도로를 달리면서 생각을 했다.
끊임없이 연애를 하고, 누군가와 헤어지면 기다렸다는 듯이 다른 사람을 만나는 사람들, 어쩌면 그런 사람들이야말로 외로운 사람들이 아닐까 하는.

혼배미사 촬영을 마치고 오후 일정 때문에 자리를 옮기고 늦은 식사를 했다. 주섬주섬 식사를 마치고 밖으로 나서는 내게 같이 일하는 친구가 물었다.
“어디가? 혹시 로또 사러 가?”
“응? 으응.”
나는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고 말끝을 흐렸다.
“같이 가자. 나도 로또 사러 가야지.”
“으응.”

계단을 내려가며 친구가 말했다.
“나는 철성이는 로또 같은 건 안 사는 줄 알았는데.”
“응? 그게 무슨 소리야? 나도 그냥 평범한 소시민이야. 로또 맞으면 뭐할까 고민하고 그러는.”
“그래? 내가 볼 땐 평범하지 않은 소시민인 줄 알았는데.”
“에이, 아냐 나도 그냥 남들과 똑같은 속물이야.”
“아닌데…”

글쎄, 뭐가 아닌지 잘 모르겠다.

로또를 사서 스튜디오로 돌아오는 길, 구름이 참 심란하게 하늘에 걸려있더라.
 
 
그나저나 로또에 맞으면 뭘 해야 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