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X/映畵'에 해당되는 글 38건

  1. 500일의 섬머 2010/04/02
  2. 페어러브 (2) 2010/01/27
  3. 사랑에 관한 세 가지 이야기 (3) 2005/12/20
  4. 랜드 오브 플렌티 (2) 2005/10/12
  5. 내 생애 가장 아름다운 일주일 (2) 2005/10/11
  6. 그 여름 가장 조용한 바다 2005/09/08
  7. 박수칠 때 떠나라 (2) 2005/08/23
  8. 연애의 목적 (8) 2005/06/14
  9. 극장전 (4) 2005/06/07
  10. 남극일기 2005/05/24

500일의 섬머

from BOX/映畵 2010/04/02 17:51

사랑은 언제 끝나는 걸까요?
사랑의 유효기간이 이 개월이라던가요, 사랑이란 게 결국은 호르몬의 작용이라고 했다지요. 하긴, 두 달쯤 지나면 반짝거리던 그녀의 눈동자도 슬슬 지겨워질 법도 하니까요. 그 모든 게 호르몬 때문에 일어나는 화학작용이라, 무언가 대단한 게 있을 법한데 왠지 좀 허무합니다.

‘500일의 섬머’라는 제목만 보고도 영화 속 주인공들 사랑의 유효기간이 500일이라는 건 쉽게 짐작할 수 있습니다. 일 년이 넘고 이 년은 조금 못되는 기간, 하나의 사랑이 시작됐다 끝나기에 적당한 시간입니다. 사랑이 지속되는데 '적당한 시간'이란 게 존재한다면 말입니다.

남자와 여자가 있습니다. 남자는 운명적인 사랑이 있다고 믿습니다. 어느 순간 자기 앞에 나타난 여자를 보고 그녀야말로 자신의 반쪽이라고 느낍니다. 그리고 남자의 사랑이 시작됩니다.
여자는, 그렇지만 운명적인 사랑을 믿지 않습니다. 남자가 맘에 들긴 하지만 그 남자가 자신의 운명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아니, 운명적인 사랑이란 건 애초에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여자에게 남자는 좋은 친구, 때론 그보다는 조금 더 친밀한 관계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닙니다.
남자와 여자의 연애는 별다를 것 없습니다. 서로의 마음을 조심스레 확인하고, 서로에게 특별한 존재가 되고, 뭔가 어긋난다는 걸 깨닫고, 싸우고, 헤어지고, 다시 만나고.

사랑은 사람을 변하게 합니다. 그 사람의 행동은 물론이거니와 마음과 생각, 그리고 신념까지도. 여자와 헤어진 남자는 이제 더 이상 운명의 반쪽 따위는 믿지 않습니다. 그리고 여자와 나눴던 사랑 역시 그냥 스쳐 지나는 작은 사건일 뿐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운명 따위는 믿지 않던 여자는 남자와 헤어지고 나서야 운명적인 사랑을 믿게 됩니다. 다른 누군가를 처음 본 순간, 그가 바로 자신에게 찾아온 반쪽이라는 걸 깨닫게 됩니다. 그리고 나서야 남자와 나눴던 시간들 역시 소중한 무엇이었다는 걸 알게 됩니다.

사랑은 언제 끝나는 걸까요? 사랑의 유효기간은 언제 만료되는 걸까요?
사랑의 끝은 새로운 사랑이 시작되는 바로 그 순간이 아닐까요? 선선한 가을바람이 불기 시작해야 여름이 끝나는 것처럼 말입니다. 어쩌면 하나의 사랑이 끝나서 새로운 사랑이 시작되는 게 아니라 새로운 사랑이 시작되는 순간에야 비로소 처음 사랑이 끝나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2010/04/02 17:51 2010/04/02 17:51

페어러브

from BOX/映畵 2010/01/27 01:00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랑을 하게 되면 정말로 모든 것을 뛰어넘을 수 있을까요? 사랑은 국경도 초월하고 인종도 초월한다는데 정말 그럴까요? 여기 이제 막 사랑을 시작하는 두 남녀가 있습니다. 서로에게 처음으로 찾아온 사랑이라는 감정 앞에서 그 둘은 조심스레 새로운 사랑을 키워나갑니다. 다만, 둘의 나이차이가 조금 난다는 게 남들과 다르지만 말입니다.

노총각, 이라고 하기엔 나이가 좀 많은 형만은 평생토록 작은 수리점에서 카메라를 고치며 살아갑니다. 그동안 모아뒀던 전재산은 절친한 친구에게 사기를 당해 형님 집에 얹혀살다 지금은 수리점에서 먹고 자는 신세입니다. 형만의 돈을 떼어먹은 친구는 생의 마지막 순간에 다시 형만을 찾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딸을 부탁한다고, 그저 잘 지내는지 하루에 한번씩만 찾아봐달라는 부탁을 남기고 죽습니다. 죽은 친구의 집을 찾아간 형만을 맞이한 건 스물다섯 살의 남은입니다. 뱃속에서부터 도망 다니는 일에 이골이 나서 조금은 불안해 보이는, 그래서 아빠가 죽은 것보다 고양이가 죽은 게 더 슬프다는 남은을 보면서 형만은 가끔 찾아와 그녀를 돌봐주기로 합니다.

사랑이 찾아오던 순간을 기억하십니까? 이제 저 사람을 사랑해야겠다, 라고 다짐을 하면서 시작하던가요? 아니면 그 사람이 절실하게 그립던가요? 아니, 사랑은 어느 순간 자신도 모르게 곁에 다가와 마음을 두드리지 않던가요? 그저 작은 작업실이 자신의 전부인 연애 한번 못해봤던 형만에게 ‘친구 딸’인 남은이 어느 순간 사랑으로 다가옵니다. 남은에게 형만은 자신이 가지지 못한 무언가를 지닌 멋진 사람입니다. 남은은 기계치인 자신과는 다르게 고장 난 기계는 무엇이든 척척 고쳐내는 형만을 동경의 눈길로 바라봅니다. 그들의 사랑은 여느 커플들과 다르지 않습니다. 서로가 다른 모습에 끌리고, 자신에게 없는 무언가가 빛나 보입니다. 그리고 사랑에 빠져 달콤한 시간을 나누게 됩니다. 다만, 그저 나이차이가 좀 날 뿐입니다.

그렇지만, 정말로 형만과 남은에게 사랑의 장애물은 나이였을까요? 친구 딸을 사랑하는 파렴치한 나쁜 놈이어서 그들의 사랑이 이루어질 수 없는 걸까요? 사랑은 국경도 초월하고 시간과 공간도 초월한다는데 그까짓 나이 때문에?
영화 ‘페어러브’는 나이든 남자와 젊은 여자의 사랑에 관한 이야기가 아닙니다. 한 남자와 한 여자의 사랑이야기입니다. 쉰 살이 넘었지만 형만은 아직까지 여자 손 한번 잡아본 적이 없는 총각이고 남은도 역시 누구와도 사랑해보지 못한 아가씨일 뿐입니다. 그들에게 나이는 별로 중요한 게 아닙니다. 그저 아저씨가 신기해 보이고, 아저씨의 빨래를 해주고 싶을 뿐이고, 아저씨라고 불리는 것보다 오빠라고 불리고 싶을 따름입니다.
처음엔 미친놈이라고 말리던 친구들과 주변사람들도 두 사람의 사랑을 이해합니다. 예쁘기만 하다면 외계인과도 결혼할 수 있다는 세상인데 그까짓 나이 차이가 뭐가 대수겠습니까.

둘의 사랑이 삐걱거리는 건 겉으로 보이는 나이차이나 시선 때문이 아니라 결국 둘의 문제 때문입니다. 처음엔 신기하게 보였던 상대방의 모습이 조금씩 익숙해지고 시간이 지나면서 답답해지게 되니까요. 그 신기함 때문에 서로에게 끌렸었지만 이제는 참을 수 없게 되면서부터 사랑에 금이 가기 시작합니다. 형만과 남은에게도 이런 사랑의 속성은 여지없이 적용됩니다.

형만은 남은에게 묻습니다. ‘내가 뭘 어떻게 하면 되겠느냐’고, 그리고 자신이 어떻게 하면 되는지 구체적으로 말해주면 그대로 하겠다고 말입니다. 그렇지만 남은은 형만이 ‘어떻게’ 해주기를 바란 게 아닙니다. ‘어떻게’하면 되는지 알 수만 있다면 세상의 그 누구도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지는 일은 없지 않을까요? 어쩌면 모든 사랑은 그 ‘어떻게’를 찾아가는 과정인지도 모르겠습니다.

‘페어러브’는 나이차이가 나는 커플의 사랑이야기가 아닙니다. 친구의 딸을 사랑하는 아저씨, 혹은 아빠의 친구를 사랑하는 젊은 여자의 이야기가 아니라 ‘지금 사랑을 시작한 두 사람’의 이야기일 뿐입니다. 서로에게 끌리고, 서로를 받아들이고, 조금씩 멀어지는 그런 아주 평범한 사랑 말입니다.

영화를 본지가 꽤 지났지만 지금도 마지막 장면이 눈에 선합니다. 두사람은 병상에 누워있는 형만을 찾아온 남은이 나지막하게 읇조리는 것처럼 될 수 있을까요? 부디 그렇게 되길 바라는 건 욕심일까요? 형만은 자신이 ‘어떻게’하면 되는지를 깨달았을까요? 영화의 마지막 장면이 머리에서 떠나질 않는 밤입니다.


영화의 예고편은 재밌는 로맨틱 코미디의 느낌입니다. 실제 영화의 전반부도 그런 느낌입니다.

그렇지만 영화의 전반적인 느낌은 이 뮤직비디오의 느낌과 더 가깝습니다.
영화를 보는 내내 음악이 너무 좋았습니다.


 

장면들.

2010/01/27 01:00 2010/01/27 01:00
사랑을 하기 위해선 두 사람이 의사소통이 되어야 하는 걸까요? 그게 아니라면, 두 사람이 사랑을 하게 되면 의사소통 따윈 필요가 없는 걸까요? 사랑, 어디에나 넘쳐나는 말이지만 정작 누구도 답을 내릴 수 없습니다.

내가 당신을 사랑하는데 이런 나의 마음을 당신이 알아주지 않는다면 뭐가 문제일까요? 나의 마음은 진심인데 내가 당신께 표현하는 방법이 문제일까요? 아니면, 당신이 나의 말을, 나의 표현을 일부러 거부하는 건가요? 당신과 사랑하기 위해 나는 내 모든 수단을 동원해서 당신께 다가가는데 당신은 이런 나의 말을, 몸짓을 알고는 있는 건가요?

<사랑에 관한 세 가지 이야기>는 사랑이 끝난 사람들, 사랑을 하고 있는 사람들, 그리고 사랑을 시작하려고 하는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세 도시에서 벌어지는 일들은 그들의 언어만 다르지 않다면 지금 우리 곁에서 일어나는 일과 하나도 달라보이지 않습니다.

만화를 그리기 위해 타이페이에서 도쿄로 유학을 온 야오는 우연히 길에서 마주친 여인 미찌코를 좋아하게 되고, 그녀가 그림을 그리는 모습을 몰래 지켜봅니다. 그녀는 3년간 만나오던 애인에게서 4초만에 이별을 통보받고 그림을 그리는 데에만 열중합니다. 야오는 미찌코 몰래 그녀의 얼굴을 그린 그림을 매일 그녀가 일하는 곳에 남겨두고, 미찌코는 자신의 얼굴을 그려주는 사람이 누군지 궁금해합니다. 그녀의 그림이 완성될 수록 야오가 그린 미찌코의 얼굴은 미소를 띄게 됩니다.

타이페이에 살고 있는 아쓰는 늦도록 잠들지 못하고 커다란 책장을 만듭니다. 겨우 완성은 했지만 혼자 힘으론 벽으로 옮길 수 없다는 걸 깨달은 아쓰는 친하게 지내던 일본 남자 테츠에게 도움을 청합니다. 아쓰와 거의 말이 통하지 않는 테츠지만 두 사람은 책장을 옮기고 장난을 치다가 서로의 상처를 알게 됩니다. 아쓰는 테츠에게 얼마 전 헤어진 연인 린쉬우에게 같이 가 달라는 부탁을 하고, 테츠는 제대로 말하지도 못하면서 아쓰를 위해 린쉬우에게 그녀의 메시지를 전합니다.

도쿄에서 중국어를 가르치던 슈헤이는 자신의 꿈을 위해 상하이로 유학을 떠나고 그 곳의 허름한 하숙집에 묵습니다. 슈헤이는 자신의 꿈을 여자친구도 이해해 주리라 믿고 상하이에서 열심히 생활해 나갑니다. 기다리던 여자친구의 소포를 받은 슈헤이는 왠일인지 슬픈 표정을 짓고, 그녀가 보낸 엽서를 찢어버립니다. 슈헤이가 묵고 있는 하숙집 딸 윤은 어느새 슈헤이를 좋아하게 되고, 그가 찢어버린 엽서를 소중하게 간직합니다. 시간이 흘러 슈헤이는 다시 일본으로 돌아가고 윤은 슈헤이에게 마지막 인사를 건넵니다.

<사랑에 관한 세 가지 이야기>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모두 낯선 곳에서 낯선 언어로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도쿄에 온 야오는 말이 통하진 않지만 자신의 진심을 그림으로 표현하고, 미찌코는 그런 야오의 마음을 이해하게 됩니다. 타이페이에서 살고 있는 일본인 테츠는 아쓰의 말을 거의 알아듣지 못하지만 그녀를 돕고, 그녀의 상처를 보듬어 줍니다. 아쓰는 자신과 같은 말을 쓰는 사람과는 헤어지고 말도 통하지 않는 테츠에게서 마음의 위로를 받게 됩니다. 상하이로 유학을 간 슈헤이는 그 곳에서 애인과 이별하게 되지만 자신의 꿈을 포기하지 않고 1년 만에 돌아갑니다. 그리고 그제서야 자신이 소중한 무언가를 모르고 있었다는 걸 깨닫게 됩니다. 슈헤이는 자신이 윤이 하는 말을 전혀 알아듣지 못했었다는 걸 알게 됩니다.

사랑을 시작하려는 사람들, 사랑에 빠진 사람들, 그리고 사랑 때문에 아파하는 사람들에게 언어란 별로 중요하지 않아보입니다. 전혀 알아듣지 못하는 말을 하지만 서로의 온기를 느낄 수 있고, 말 한 마디 나누지 않아도 서로의 진심을 알아차리는 게 바로 사랑이니까요. 어쩌면, 오히려 상대방에게 너무 많은 말을 하고 서로의 이야기를 너무나 잘 알아듣는다면 사랑은 그만큼 멀어지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내가 당신에게, 당신이 나에게 다가오기 위해선 그리 많은 게 필요하지 않을 지도 모릅니다. 당신의 진실한 마음과, 그 것을 이해하기 위한 나의 마음뿐.
2005/12/20 20:49 2005/12/20 20:49

랜드 오브 플렌티

from BOX/映畵 2005/10/12 00:04
솔직히 말하자면 9.11 테러가 나에게 큰 영향을 끼친 건 아니다. 텔레비전으로 생중계되는 장면을 보는 순간 놀랐지만 그건 먼 나라의 이야기였다. 게다가 미국이라는 나라에 대해서 별다른 호감이 있었던 것도 아닌지라 특별한 감정이 생길리 없었다. 물론, 수많은 죄없는 사람들이 죽었다는 사실은 충격적이었다. 사람이 사람을 죽인다는 건 어떤 이유로도 용납될 수 없다고 믿고 있었기에 테러범들을 향한 미국인들의 적대감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미국인들에게는 9.11 이전과 이후가 전혀 다른 세계가 되어버렸다는 건 이해한다. 그렇지만 역시 먼 나라의 이야기다. 직접적인 연관이 없는 내겐 그런 끔직한 일이 있었고 많은 사람들의 삶이, 나와는 상관없는 사람들이지만, 달라졌다는 것도 알고 있다. 세계정세가 달라진 것도 알고 있다. 그리고 그 방향이 잘못된 쪽으로 향하고 있다는 것도 알고 있다. 사랑하는 사람들을 잃은 사람들의 분노와 적대감, 무너져내린 오만한 자존심, 새로운 먹이를 찾고 있던 굶주린 맹수들의 눈. 그렇지만 테러에 대한 응징으로 똑같은, 아니 더 무자비한 폭력을 행사하는 그들을 보면서 뭔가 잘못된 거라는 생각을 했다.

영화 <화씨 9/11>은 꽤 선동적인 영화였다. 테러가 발생한 순간, 대통령이라는 작자가 했던 일들이며, 테러범이라고 지목한 사람들과 대통령의 유착관계며, 믿어지지 않는 사실들을 폭로하고 그들에게 신랄한 비판을 쏟아부었다. 영화를 보는 동안 관객들은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할 수 있었지만 내심 불편한 것도 사실이었다. 세계를 뒤흔들어 놓은 사건은 영화에도 영향을 끼쳤다. 빔 벤더스 감독의 <랜드 오브 플렌티>는 그렇지만 <화씨 9/11>과는 다르다. 그 사건이 발생하고 2년이 지났다. 사람들은 그 사건이 발생하기 전과 똑같이 평범하고 조용한 삶을 살아간다. 그렇지만 LA에 사는 폴은 다르다. 자신의 아름답고 위대한 조국 미국의 심장이 무너져내렸다는 사실을 결코 잊을 수 없는 폴은 자신만이라도 조국을 지켜야 한다는 사명감으로 경계를 늦추지 않는다. 그에게 아랍인들은 모두 잠재적인 테러범이고 국가안보를 위협하는 존재다.
폴의 조카 라나는 선교사인 부모님을 따라 세계곳곳을 떠돌다 어머니의 유언대로 연락이 끊긴 삼촌을 찾기 위해 조국 미국으로 돌아온다. 라나는 LA의 선교단체에서 일하면서 거리의 노숙자들에게 먹을 것을 나눠주는 봉사활동을 하면서 삼촌 폴을 찾는다. 우연히 라나와 연락이 된 폴은 조카가 일하는 곳에 가서 그녀의 동태를 살피지만 마음은 열지 않는다.
그러던 중, 폴이 테러범이라고 의심하던 아랍인이 라나가 일하는 곳으로 음식을 얻기 위해 오고, 그날 저녁 거리에서 총에 맞아 사망한다. 아랍인 하산이 총에 맞아 죽는 순간까지도 폴은 그에게 배후가 누구냐고 묻는다. 폴이 볼 때, 하산은 다른 테러 조직원에 의해 살해당한 또다른 테러범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라나는 하산의 죽음을 안타까워하며 그의 가족을 찾아 시신을 전해주려고 노력한다.
라나는 하산의 가족을 찾기 위해, 폴은 하산의 배후를 찾기 위해 각기 다른 목적으로 둘은 하산의 시신을 유일한 가족인 이복형이 살고 있다는 트로나로 옮기는 여정에 오른다.

어떻게 보면 라나나 폴이나 모두 이상주의자들이다. 라나는 자신이 좋아하는 아랍 친구들이 무역센터 건물이 무너지는 순간에 환호성을 지르는 걸 보고 혼란에 빠진다. 그들과 절친한 친구라고 믿었는데 자신의 조국인 미국의 심장부에서 테러가 벌어졌는데 어떻게 좋아할 수 있는지 라나에게는 믿을 수 없는 일이었다. 폴에게 미국은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자랑스럽고 위대한 나라였다. 그런데 일개 아랍인들에 의해서 가장 아름답고 위대한 나라의 심장이 무너져내렸다는 사실은 믿을 수 없는 일이었다. 두 사람은 자신들의 이상이 무너져내렸다는 사실을 믿을 수 없었고, 각기 다른 방식으로 그 해결책을 찾아나선다.
폴에게는 9.11테러 이전에 월남전의 악몽이 있다. 위대한 나라의 위대한 군인으로 참전했던 전쟁에서 폴은 동료들이 죽는 모습을 지켜봤고 무역센터 건물이 무너져내리는 순간 그 때의 악몽이 되살아난다. 그 악몽을 잊기 위해 폴은 자신의 위대한 조국을 지키기 위해 발벗고 나선다.
그 누구도 폴에게 손가락질을 할 수는 없다. 그에겐 위대한 조국 미국은 하나의 진리였고, 테러가 발생한 이후에도 여전히 진리다. 그런 진리를 거부하는 자들은 조국을 위해 제거해야 하는 게 그에게는 당연한 의무다. 라나에게는 피부색은 아무런 의미도 없다. 세상 모든 사람들이 친구인 그녀는 LA뒷골목의 노숙자들이나 박해받는 아랍인들을 이해할 수 없다. 낯선 사람에게 감시의 눈초리를 보내고 총을 겨누는 사람들 역시 그녀는 이해할 수 없다.
삼촌과 하룻밤을 보내면서 삼촌이 무슨 일을 겪었는지 조금이나마 알게 된 그녀에게 삼촌은 더이상 낯선 존재가 아니다. 폴 역시 라나에게 자신의 상처를 모두 보여준 후에 진짜 삼촌이 된다. 그리고 라나의 엄마가 마지막으로 부탁했던 일을 해나간다.

9.11 테러라는 소재 때문이기도 했지만 실은 빔 벤더스 감독의 영화라는 점이 더 끌렸다. 전작 <밀리언 달러 호텔>에서도 아름다운 이미지와 음악을 선보인 빔 벤더스 감독의 다른 영화들 역시 뛰어난 영상과 음악을 선보인다. <랜드 오브 플렌티>역시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영화의 후반부엔 미국의 풍광이 한 편의 뮤직비디오처럼 펼쳐지고 아름다운 선율이 흐른다. 테러니 이념이니 하는 것들을 떠나서라도 영화는 이미 충분히 아름다운 선물을 관객들에게 선물한다. 영화 홍보물의 한 귀퉁이엔 '명불허전'이라는 문구와 함께 OST선전이 적혀있다. 영화음악을 들어본 사람이라면 아마도 그 '명불허전'이라는 문구에 동의하게 될 것이다.

<랜드 오브 플렌티>, 풍요의 땅 미국에 관한 이야기, 가장 풍요로운 나라의 슬픈 우화라는 문구가 기억에 남는다.

랜드 오브 플렌티 Land of Plenty (2004)

2005/10/12 00:04 2005/10/12 00:04
텔레비전 드라마를 보면 언제나 등장하는 인물들은 서로 관련을 맺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아무런 연관이 없어 보이는 사람들도 알고 보면 어디서 한 번쯤은 만난 사람이거나 아는 사람의 아는 사람입니다. 사실, 현실을 둘러보면 드라마와 별로 다르지 않습니다. 내가 알고 있는 사람들이란 거기서 거기고, 어쩌다 낯선 사람들을 만나더라도 결국 어떻게든 연관이 되어있기 마련입니다. ‘세상이 참 좁다’라는 말들을 그래서 하게 됩니다.

<내 생애 가장 아름다운 일주일>은 여러 사람들이 일주일 동안 겪은 사랑이야기입니다. 그들은 아무런 연관이 없어 보이지만 실은 자신들도 모르는 사이에 어떤 식으로든 연결이 되어 있는 사람들입니다.
남편과 이혼한 당당한 여의사 유정은 텔레비전 토론 프로그램에서 무식해 보이는 마초 나형사와 설전을 벌입니다. 정말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두 사람이지만 묘하게 서로에게 끌리기 시작하고 어느새 두 사람은 가까운 사이가 됩니다.
어느 날, 유정이 일하는 병원에 예비수녀 수경이 입원하게 됩니다. 십대들의 우상인 가수 정훈을 향한 마음 때문에 자살기도를 한 그녀의 옆자리에 거짓말처럼 정훈이 입원하게 되고 수경은 정훈을 향해 다가갑니다.
왕년에 잘 나가던 농구선수 성원은 지금은 채무자들에게 빛을 독촉하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한 때 사랑했던 사람이 자신을 배신한 이후로 사랑 같은 건 믿지 않는다는 그의 앞에 8살짜리 꼬마가 나타나 아빠라고 부릅니다. 병원에 입원해 있는 딸 진아를 위해 성원은 다시 농구코트에 설 결심을 합니다.
성원에게 빛 독촉을 받는 창후는 사랑하는 아내 선애가 임신을 한 사실을 알게 되지만 무능력한 자신의 처지가 답답하기만 할 따름입니다. 선애는 창후가 직장도 없이 지하철에서 물건을 팔고 있다는 걸 알고 창후가 모르게 김밥을 팔면서 둘의 사랑을 키워나갑니다.
한편, 낡은 극장을 운영하는 구두쇠 곽회장은 자신의 건물에 세 들어 있는 오여인을 좋아하지만 오여인 앞에선 아무 말도 하지 못합니다. 오여인 역시 곽회장이 자신을 좋아한다는 걸 알고는 있지만 모른 척 시치미를 뗍니다.

언뜻 보면 전혀 상관없는 사람들의 이야기 같지만 <내 생애 가장 아름다운 일주일>에 등장하는 사람들은 제각각 묘한 인연으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서로를 못 잡아먹어서 안달인 성원과 창후는 자신들도 모르게 중요한 순간에 마주치게 되고, 나형사와 창후 역시 중요한 순간에 스치듯 마주칩니다. 정훈과 유정 역시 자신들은 모르지만 의사와 환자 이상의 관련이 있다는 걸 관객들은 영화를 보면서 알게 됩니다. 다른 등장인물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는 사람을 일곱 단계만 거치면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아는 사람이 된다는 말처럼 영화 속에 등장하는 사람들은 모두 묘한 인연으로 맺어진 사람들입니다.

<내 생애 가장 아름다운 일주일>은 영화가 만들어 질 때부터 한국판 <러브 액츄얼리>라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물론 공식적인 홍보물에서는 그런 말을 볼 수 없지만 관객들은 이미 영화를 보러 가기 전부터 <러브 액츄얼리>를 떠올리게 됩니다. 여러 쌍의 주인공들이 등장하고 서로가 어떤 식으로든 연관이 있다는 점만으로도 이미 <내 생애 가장 아름다운 일주일>은 <러브 액츄얼리>를 떠올리게 만듭니다. 그렇지만 영화의 후반부는 마냥 가슴이 따뜻한 사랑이야기와는 거리가 멀어 보입니다. 빛 독촉에 시달리는 창후와 선애는 막다른 골목까지 내몰리게 되고, 유정과 그녀의 전남편 역시 시련에 빠집니다. 사랑이란 반드시 이루어지란 법이 있는 건 아니니까요.
그러나 <내 생애 가장 아름다운 일주일>은 여전히 달콤한 사랑이야기입니다. 사랑에 빠진 사람들이 일주일 동안 이런저런 일들을 겪지만 결국엔 모두 행복해 진다는 결말은 영화를 보지 않은 사람들이라도 쉽게 짐작할 수 있는 내용입니다. 관객들이 보고 싶은 것도 그런 달콤한 사랑이야기니까요.

그렇지만,

2005/10/11 16:09 2005/10/11 16:09
여름과 바다, 거기에 파도타기까지. 어떤 풍경이 떠오르나요? 화려한 여름 바다, 젊은 여인들의 비키니, 건장한 청년들의 우락부락한 근육, 어디선가 들려오는 떠들썩한 파티의 소음, 약간은 흥청거리는 여름의 모습이 저절로 떠오릅니다. 그렇지만 기타노 다케시 감독이 본 그 여름의 풍경은 너무나도 고요한 모습입니다.

듣지도 말하지도 못하는 청년 시게루는 청소부입니다. 어느날 바닷가에 버려진 서핑보드를 발견한 시게루는 그걸 자신의 집으로 가져가 손수 고칩니다. 다음날부터 시게루는 낡은 서핑보드를 들고 바닷가로 나갑니다. 그의 뒤에는 언제나 그의 여자친구가 따라갑니다. 엉망인 솜씨로 파도를 타는 시게루, 그리고 그런 그를 웃으며 바라보는 그의 여자친구. 그 여름의 가장 조용한 바다의 모습입니다.
시게루의 낡은 서핑보드는 결국 완전히 부서지고 그와 그녀의 여자친구는 새로운 서핑보드를 사기 위해 가게에 가지만 비싸서 그냥 발길을 돌립니다. 월급을 받은 시게루는 바가지를 쓰는 건지도 모른 채 기쁜 마음으로 서핑보드를 사고 둘은 언제나처럼 바닷가로 향합니다. 그동안 시게루를 지켜보던 가게주인은 시게루에게 대회출전을 권유하고 시게루와 그의 여자친구는 대회장으로 향합니다. 그렇지만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걸 듣지 못하는 시게루는 바다에는 나가보지도 못하고 실격합니다. 가게주인과 서핑팀은 시게루를 자신들의 팀에 받아들이고 다른 대회에 출전하고 시게루는 좋은 성적으로 입상합니다. 여름이 끝나갈 무렵, 시게루 혼자 비가 내리는 바다로 향하고 조금 뒤에 해변으로 간 그의 여자친구는 혼자서 파도에 흔들리고 있는 시게루의 서핑보드만 발견합니다.

기타노 다케시 감독의 영화에는 대부분 야쿠자가 등장합니다. 낭자한 선혈과 어울리지 않는 유머. 그렇지만 <그 여름 가장 조용한 바다>에는 단 한 명의 야쿠자도 등장하지 않습니다. 주인공은 모두 듣지도 말하지도 못합니다. 주인공의 주변 인물들은 모두 정상인들이지만 그들 역시 조용하긴 마찬가지입니다. 누구에게 배우지도 않고 무작정 바다로 뛰어들어 파도를 타는 시게루, 그런 시게루를 웃으며 바라보는 그의 여자친구. 그 여름의 바다는 정말 고요합니다.
주변 인물들의 모습은 기타노 다케시 감독의 다른 영화들 처럼 예기치 않은 웃음을 선사합니다. 바다에 뛰어들 때마다 넘어지는 남자와 남자가 파도를 타는 동안 다른 남자에게 수작을 거는 여자, 엉뚱한 시게루의 친구들, 그 외에도 장면장면에서 웃음을 터트리게 됩니다. 그렇지만 <그 여름 가장 조용한 바다>는 쓸쓸합니다. 여름이 끝나가는 바닷가에서 시게루는 사라지고 그의 여자친구는 늘 그랬던 것처럼 아무렇지도 않게 그를 바다로 보내줍니다. 서글프지만 눈물을 흘릴 수 없는, 눈물이 흐르지만 슬프지 않은 영화입니다.

<그 여름 가장 조용한 바다>를 보고 나니 <키즈 리턴>이 못견디게 다시 보고싶어졌습니다.
2005/09/08 16:20 2005/09/08 16:20

박수칠 때 떠나라

from BOX/映畵 2005/08/23 18:16
오랜만의 포스팅입니다. 하고 있는 일이 여전히 마무리가 되질 않아서 정신없는 날들을 보내고 있습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현재를 미디어의 시대라고 말합니다. 지구의 반대편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실시간으로 거실에서 볼 수 있고, 수많은 젊은이들이 목숨을 걸고 싸우고 있는 전쟁의 현장을 마치 게임의 한 장면처럼 중계방송해주는 시대입니다. 텔레비전 앞에 앉아있는 사람들은 점점 자극에 무감각해지고 좀더 강한 무언가를 원하고 매체들은 그런 시청자들의 눈과 귀를 잡아두기 위해 더욱 심한 경쟁을 하면서 소위 말하는 미디어의 시대는 쓰레기의 시대, 혹은 광기의 시대가 되어버렸습니다.

영화 <박수칠 때 떠나라>는 이런 미디어 시대에 있을 법한 일들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강남의 어느 고급 호텔에서 잘나가는 미모의 카피라이터 정유정이 온 몸에 칼이 찔린 채 시체로 발견됩니다. 유력한 용의자는 현장에서 검거된 김영훈이라는 남자. 동물적 감각을 지닌 최연기 검사가 지휘하는 수사팀이 발 빠르게 움직이는 동안 방송국 스텝들 역시 수사팀의 뒤를 쫒습니다. 대한민국 건국 이래 최초로 범죄 없는 사회 만들기 캠페인의 일환으로 살인사건 수사 생중계라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방송이 전파를 타면서 모든 수사상황이 실시간으로 생중계 되고, 스튜디오에서는 방청객들과 전문가들이 열띤 논쟁을 벌이게 됩니다.
범인인지 아닌지를 놓고 김영훈과 최연기 검사는 팽팽한 신경전을 벌이고 쉽게 풀릴 것 같았던 사건은 점점 미궁 속으로 빠지게 됩니다. 수사가 지지부진해지면서 시청자들의 반응도 식고, 떨어지는 시청률을 만회하기 위해 방송 스텝들은 비장의 카드를 꺼냅니다.

미디어의 시대, 전쟁도 생중계를 하는 마당에 살인사건 수사를 중계방송하지 못할 이유는 없습니다. 게다가 미모의 여자가 혼자 호텔에 투숙했다가 온 몸에 칼이 찔린 채 발견됐고, 현장에서 휘발유통을 들고 도망치던 젊은 남자가 검거됐다면 결과가 뻔히 들여다보이지만 꽤 흥미진진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수사를 맡은 검사는 마치 영화배우처럼 ‘화면발’이 잘 받고, 범인 역시 잘생긴 청년에다 머리까지 비상해 보인다면 이건 마치 흥행은 예약된 영화와도 같습니다.
그렇지만 <박수칠 때 떠나라>는 말 그대로 ‘버라이어티 리얼 수사극’입니다. 관객들에게 단서를 던져두고 머리싸움을 하자고 하는 영화도, 심리 미스터리 영화도 아닌, 이를테면 ‘VJ특공대’나 ‘경찰 24시’와 비슷한 영화입니다. 관객들은 텔레비전을 보는 것처럼 저런 사건이 있었고 저렇게 수사를 하는구나만 보면 그만입니다. 과연 범인이 누구인지, 왜 죽였는지, 무슨 사연이 있는지는 영화 속에서 수사를 하는 최연기 검사와 형사들이 생각할 일입니다.
멋지게 시작했지만 하루도 안 돼서 지루해진 ‘정유정 살해사건, 누가 그녀를 죽였는가?’는 시청자들을 텔레비전 앞에 잡아두기 위해 엄청난(?) 쇼를 준비하고 단순하게 끝날 것 같았던 쇼는 의외의 상황으로 전개됩니다. 그 과정에서 범인이 밝혀지고 대한민국 최초의 시도는 성공적으로 마무리가 됩니다.

물론 아직까지 <박수칠 때 떠나라>처럼 살인사건 수사과정이 실시간으로 생중계되는 일은 없지만 텔레비전 채널을 돌려보면 ‘리얼리티’라는 이름을 단 수많은 프로그램들을 볼 수 있습니다. 강한 자극을 원하는 시청자들을 위해 매체는 자극적인 프로그램을 만들고 그럴수록 시청자들은 자극에 둔해지면서 더욱 강한 무언가를 원하는 세상입니다. 사람들이 원하는 건 ‘왜 그녀가 죽었을까?’, 혹은 ‘왜 그녀를 죽였을까?’가 아니라 ‘누가 그녀를 죽였을까?’나 ‘어떻게 그녀를 죽였을까?’니까요.

박수칠 때 떠나라 (2005)


그렇긴 하지만(영화를 아직 안 보신 분들에겐 김빼기가 될 수 있습니다.)

2005/08/23 18:16 2005/08/23 18:16

연애의 목적

from BOX/映畵 2005/06/14 15:16

연애의 목적 (2005)


남자와 여자가 만나서 사랑에 빠지게 되면 호르몬이 분비된다고 합니다. 그렇지만 그 호르몬의 유효기간이 삼 년이라고 했던가요? 삼 년이 지나면 더 이상 사랑의 감정을 느끼지 못한다는 연구 결과가 발표된 적이 있습니다. 아마 많은 사람들이 고개를 끄덕거렸겠죠. 그렇지만 그 유효기간이 삼 년이면 어떻고 삼 개월이면 어떤가요. 사랑이라는 게 뭐그리 대단한 거라고 말입니다. 그저 남자와 여자가 만나서 서로 맘에 들면 쿨하게 연애 한 번 하면 그만인데 말이죠. 쪼잔하게 빙빙 돌려가면서 말하지 않고, 내숭 떨지 않고 당당하게, 혹은 솔직하게 ‘당신이 좋으니까 우리 연애나 한 번 합시다’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요? 아마 십중팔구 상대방에게 따귀를 맞을 게 뻔하지만 그래도 말 한마디 하지 못하거나 구걸하듯 조르는(뭘?) 것보다는 훨씬 괜찮아 보이지 않나요?

사랑과 연애는 과연 다른 걸까요? 사랑하니까 연애를 한다는 말은 그럴듯해 보이지만, 연애를 하니까 사랑한다는 말은 앞뒤가 안 맞는 것처럼 들립니다. 그렇다면 사랑의 목적은 뭘까요? 사랑에 목적이 있을 수 있을까요? 당신을 내 곁에 잡아두고 싶어서 사랑합니다, 당신과 함께 살기 위해 사랑합니다, 당신을 잊을 수 없어서 사랑합니다, 당신을 미워할 수 없어서 사랑합니다... 사랑의 목적이라니, 어디 감히 신성한 사랑에 목적 운운할 수 있냐고 화를 내는 사람도 있겠군요. 그럼, 연애의 목적은 뭘까요? 당신을 한 번 어떻게 해보기 위해서? 좀 더 솔직하게 말해서 당신과 한 번 자고 싶어서? 그렇다면 솔직히 따지고 보면 사랑의 목적도 비슷한 게 아닌가요? 당신과 헤어지기 싫고, 당신과 늘 함께 하고 싶고, 당신의 모든 것을 알고 싶어 하는 것, 결국엔 당신과 한 번 자고 싶어서 라는 말을 좀 더 멋있게 표현한 게 아니던가요?

아무튼, 여기 엉큼한 남자가 있습니다. 처음 본 여자에게 당신이 맘에 드니까 우리 같이 잡시다, 라고 아무렇지도 않게 말하는 정말 뻔뻔한 인간입니다. 초면에 그런 말을 들은 여자도 만만치 않습니다. 혹시 마약하세요, 라는 말은 약과, 자기랑 자려면 돈을 내야한다는군요. 남자라고 질 수 있나요, 그럼 당장 요 앞에 있는 여관에 가자고 손을 잡아끕니다. 막상막하, 난형난제군요. 이 남자 어떻게 하면 이 여자와 한 번 잘 수 있을까 호시탐탐 기회를 노립니다. 점심시간에 불러내서 할 이야기가 있다면서 여자를 모텔로 데려가질 않나, 여자 집 앞에서 죽치고 기다리다 열쇠를 뺏어서 허락도 없이 여자 집에 들어가질 않나. 여자라고 질 수 있나요, 뻔히 무슨 꿍꿍이인지 알면서도 남자를 따라 대낮에 모텔에 가질 않나, 무작정 쳐들어온 남자 옆에 못이기는 척 눕질 않나, 술에 취한 남자를 끌고 여관에 가질 않나... 정말 대단한 커플입니다.
그렇지만 쿨하게 연애만 하자던 이 남자와 여자도 결국 연애로 끝나진 않습니다. 그냥 한 번 자면 끝날 줄 알았는데, 서로 좋은 감정으로 연애만 하고 결혼은 안정적인 사람과 하면 될 줄 알았는데, 남자와 여자 모두 자신들이 했던 일들이 단순한 불장난이 아니란 걸 알게 됩니다. 하긴, 연애나 사랑이나 뭐 별다른 게 있나요. 둘이 만나서 좋으면 손잡는 거고, 손잡고 다니다보면 입맞춤하고 싶어지고, 입맞춤 한 번 하게 되면 어떻게 한 번 같이 자고 싶어 하는 게 사람의 심리니까요. 연애가 어떻고, 사랑이 어떻고 하는 말들은 전부 쓰레기통에 던져버리는 게 나을지도 모릅니다. 게다가 연애의 목적, 사랑의 목적이라니요? 어차피 결말은 해피엔딩이거나 17층에서 떨어져 죽어버리거나 둘 중의 하나일 테니까요.

단, 무작정 따라하면 따귀를 맞거나 잡혀갈 건 뻔한 이치입니다. 언제나 그렇듯이 영화는 단지 영화일 뿐이니까요. 그래도 한 번 슬쩍, ‘우리 같이 잘래요?’라고 찝적대보고 싶어지는 건 왜일까요? 받아줄 사람만 있다면 말입니다. 어차피 사랑이란 것도 삼 년, 아니 어쩌면 삼 개월이면 끝나버릴 텐데 말입니다. 애당초 연애나 사랑에 목적 따위가 있었을 리가 만무하니까요.

사실,

2005/06/14 15:16 2005/06/14 15:16

극장전

from BOX/映畵 2005/06/07 18:03

극장전 劇場前 (2005)


영화관에서 영화를 보고 난 후, 극장 밖으로 나온 관객들은 잠깐이나마 자신이 영화 속 주인공이 된 듯한 착각에 빠지기도 합니다. 보고 나온 영화가 달콤한 사랑에 관한 이야기였다면 자신도 주인공처럼 멋진 사람과 연애를 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우울한 이야기를 보고 나왔다면 한 잔의 술을 생각하기도 합니다. 영화는 현실의 반영이라고 하던가요, 관객들이 겪어보지 못한 ‘일상’을 보여주는 게 영화가 가진 매력이기도 합니다.

홍상수 감독의 영화는 그런 ‘일상’에 관한 이야기들입니다. 지루하고 보잘것없고, 때론 너무나 현실적이어서 마치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을 보는 것 같습니다. 홍상수 감독의 여섯 번째 영화 <극장전>역시 비슷한 이야기입니다. 이제 막 수능시험을 치른 열아홉 살의 상원은 종로거리에서 우연히 영실을 만납니다. 상원의 친구의 여자친구였던 영실은 상원의 첫사랑이기도 합니다. 그녀를 좋아하고, 그녀 역시 자신을 좋아한다는 걸 알았지만 친구의 여자친구라는 사실 때문에 만나지 않고 있다 몇 년 만에 우연히 만난 그녀. 상원과 영실은 함께 술을 마시고 여관에서 같이 자게 됩니다. 상원과 영실의 위태위태한 하루가 지나고 나면 극장의 문이 열리고 현실세계가 펼쳐집니다. 선배감독이 만든 영화 ‘극장전’을 보고 나온 동수 앞으로 영실을 연기한 여배우 최영실이 지나가고, ‘극장전’을 감독한 선배가 죽어간다는 소식과 함께 병원비 모금을 위한 동창회 모임이 있다는 연락을 받습니다. 모임에 나갈지 말지 결정하지 못한 동수는 영화에 등장했던 곳을 찾아 나서고 그 곳에서 배우 영실과 마주칩니다. 의외로 친절한 영실이 저녁 모임에 나온다는 말을 듣고 동수 역시 동창회 모임에 참석합니다.

홍상수 감독의 영화를 불편해 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보잘 것 없는 일상을 너무나 세세하게 그려내는 그의 영화를 보고 있으면 지루하고 때론 불쾌하기까지 한 게 사실입니다. <생활의 발견>으로 관객들과 친숙해졌다 싶었던 그는 <여자는 남자의 미래다>로 다시금 어려운 감독, 혹은 도무지 알 수 없는 감독이 되어버렸습니다. 물론 그의 영화를 좋아하는 관객들도 있지만 대부분의 관객들은 재미없는 영화, 혹은 지루한 영화로 알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극장전>은 꽤 유쾌한 작품입니다. 보는 내내 킥킥거리고 어느 장면에서 손뼉을 치며 웃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됩니다. ‘극장전’을 보고 나온 동수는 영화 속 상원의 이야기가 자신의 이야기라고 믿고, 영화 <극장전>을 본 관객들은 동수의 모습에서 자신의 모습을 보게 됩니다. 어딘지 어수룩하지만 그렇다고 대놓고 미워할 수는 없는 캐릭터, 게다가 극장 앞에서 우연히 만난 여배우와 하루를 보내는 행운까지, 어쩌면 관객들의 모습이 아니라 관객들이 꿈꾸는 모습일지도 모릅니다.
마지막 장면에서 관객들은 의외의 반전(?)까지 보게 됩니다. 그리고 그동안 나레이션이 없던 동수의 짧은 나레이션과 함께 영화는 끝이 납니다. 자막이 올라가면서 웅성거리는 관객들에게 아마 감독은 이런 말을 하지 않았을까요?

'자긴 이제 재미 다 봤죠? 그럼 이제 그만 뚝! 집에 가서 쉬세요.'

사실,

2005/06/07 18:03 2005/06/07 18:03

남극일기

from BOX/映畵 2005/05/24 17:57
어린시절 나침반을 가지고 놀기 시작할 때부터 지구는 하나의 커다란 자석이라는 걸 배웠습니다. 남극과 북극이 자석의 양 끝처럼 지구상에 있는 모든 쇠붙이들에 영향력을 행사한다는 사실은 누구나 알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우리가 아무렇지도 않게 남극이라고 부르지만 여러 가지 의미의 남극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들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일반적으로 남극이라고 생각하는 지리적 남극점은 남위 90도, 미국의 아문젠-스코트 기지 인근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남극대륙의 얼음이 항상 움직이기 때문에 매년 남극점 위의 표지설치물을 다시 세웁니다. 지구를 하나의 커다란 자석이라고 봤을 때의 남극점을 지자기 남극점이라고 합니다. 남위 78도, 동경 111도 부근으로 지구 전역의 자기를 측정해서 지자기 극을 설정한 곳입니다. 그 외에도 실제 자기 남극점, 최저론 남극점 등이 있고 상대적 접근 불가능 남극점이 있습니다. 남위 82도 06분, 동경 54도 58분에 위치한 이 지점은 남극 해변의 여러 방향에서 고려했을 때 상대적으로 가장 내륙에 위치한 지점입니다. 내륙의 가
장 깊숙한 지점이지만 인간이 도달할 수 없는 지점은 아닙니다. 영화 <남극일기>에서 탐험대원들이 목표로 한 ‘도달불능점’이 바로 상대적 접근 불가능 남극점입니다.

영화 <남극일기>는 개봉되기 전부터 남극에 관한 최초의 영화라는 관심을 불러 모았습니다. 노련한 탐험대장 최도형을 비롯한 여섯 명의 탐험대원들은 세계 최초로 무보급 횡단 도달불능점 정복에 나섭니다. 여섯 달 동안 계속되는 남극의 밤이 오기 전에 도달불능점에 도착해야 하는 이들의 탐험은 처음에는 순조로워 보입니다. 탐험을 계속하던 일행은 80년 전의 영국탐험대가 남긴 낡은 일기장을 발견합니다. 탐험대의 막내인 민재는 영국탐험대 일기를 살펴보던 중 이상한 점을 발견합니다. 그리고 일기장을 발견한 후부터 탐험대에게 이상한 일이 벌어지기 시작합니다. 바이러스가 살 수 없는 남극인데도 감기증상을 보이며 쓰러진 탐험대원은 끝내 실종되고 갑자기 블리자드(돌풍)가 불어 닥치는가 하면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 화이트 아웃 현상까지 겪게 됩니다. 설상가상으로 베이스캠프와의 교신조차 끊어지고 도달불능점을 향한 탐험은 고비를 맞습니다.

영화는 도달불능점이라는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탐험대원들 사이에서 벌어진 일들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여섯 달 동안 해가 지지 않는 남극의 낮, 대원들은 오로지 걷고 먹고 자는 일만으로도 힘에 겨워하지만 탐험대장 최도형은 대원들을 독려하면서 시간 내에 도달불능점에 도착하기 위해 최선을 다합니다. 그 스스로 대원들을 자신의 자식이라고 말하지만 실종된 대원을 찾으려는 노력보다는 도달불능점에 도착하는 것만이 유일한 목적처럼 보입니다. 크레바스에 빠진 대원을 구조하는 순간에 보여준 그의 행동 역시 대원들을 자식처럼 생각한다는 그의 말과는 달라 보입니다. 그에게는 도달불능점을 정복하는 것만이 유일한 목표입니다. 도달불능점을 향한 무모한 집착 때문에 대원들의 탐험은 악몽으로 변해버립니다.

<남극일기>는 남극에 관한 영화입니다. 그렇지만 반드시 남극이었어야 했는지는 의문입니다. 소변도 맘대로 보지 못하고 병에 모아야 하는 곳, 바이러스가 존재하지 않는 곳, 일 년의 반은 낮이고 나머지 반은 밤인 곳, 이런 모습들은 남극에서만 볼 수 있는 것이었겠지만 고립된 장소에서 벌어지는 일들, 의문의 실종, 치유할 수 없는 내면의 상처, 그리고 이룰 수 없는 것에 대한 무모한 집착 같은 영화가 정작 보여주고 싶었던 것들은 남극이 아니라 우리가 생활하는 이곳에서도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는 일입니다. 남극의 설원과 해가지지 않는 밤을 보고 싶었다면, 그리고 그런 것들을 보여주고 싶었다면 영화가 아니라 다큐멘터리로도 충분했을 겁니다. 탐험대장 최도형을 괴롭히는 상처가 무엇인지, 탐험대가 발견한 영국탐험대의 일기장의 내용이 무엇인지, 그리고 과연 그 일기장과 탐험대가 겪는 일은 무슨 관련이 있는 건지 영화를 보고 나와서도 쉽게 이해할 수가 없었습니다. 아니, 너무나 뻔한 이야기였는지도 모릅니다. 남극 최초의 미스터리라는 선전문구는 공허한 메아리처럼 들리고 관객들에게 미리부터 이 영화는 미스터리 영화니까 그렇게 생각하고 보라고 강요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화려한 볼거리와 영상도 중요하겠지만 기본적인 이야기야말로 영화의 가장 중요한 요소라고 생각합니다. 미스터리와 공포를 보여주고 싶었다면 그에 걸맞는 짜임새가 있었어야 하는데 <남극일기>는 그런 것들이 부족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결국 <남극일기>는 도달불능점을 꿈꿨으나 도달하지 못한 것 같습니다. 어쩌면 처음부터 도달불능점은 존재하지 않았는지도 모릅니다.

남극일기 Antarctic Journal (2003)

2005/05/24 17:57 2005/05/24 17:5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