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인생이 사흘간의 짧은 여행처럼 낯선 설렘과 두려움으로 가득 차 있다면 얼마나 아름다울까? 길을 잃은 나그네가 되어 바람을 따라 떠돌 수만 있다면.
변하지 않는 절대적인 거리가 있다. 그렇지만 사람들은 그 거리를 좁히기 위해 무던히 애를 쓴다. 길을 새로 만들고, 다리를 놓는다. 새로운 철길을 만들고 빠른 속도의 기차를 그 철길 위에 올려놓는다. 그렇지만 절대적인 거리는 줄어들지 않는다. 단지 시간만 줄어들 뿐이다. 시간을 아끼기 위해 무던히 노력하지만 그렇게 해서 남은 시간을 어디에 써야 하는지 까지는 신경 쓰지 않는다.
미리 예약해뒀던 부산행 새마을호 열차를 타기 위해 부지런히 서울역으로 향했다. 그렇지만 열차가 막 떠나려는 순간에 겨우 표를 끊을 수 있었고 탑승할 수 없다는 말과 함께 환불을 받고 KTX표를 새로 끊었다. 부산으로 가는 길, 네 시간의 기차여행을 꿈꾸던 나는 서울역에 버려진 사람처럼 던져졌다. 두 시간 뒤 떠나는 KTX를 기다리며 역 주변을 돌아본다. 여행을 떠나는 사람들, 여행에서 돌아오는 사람들, 그리고 길 위의 사람들. 소주병을 앞에 둔 할아버지 두 분은 맨바닥에 앉아 연신 큰 소리로 떠들며 술잔을 기울이고 있다. 커플 티를 입고 손을 잡고 앉아서 티비를 보고 있는 연인들 옆에는 노숙자로 보이는 사람이 머리를 긁으며 졸고 있다.
네 시간이 넘는 거리를 두 시간 반 만에 갈 수 있어졌지만 남는 두 시간을 어떻게 보내야 하는지 알 수 없다. 기차 안에서 읽으려고 가방에 넣어 온 윤대녕의 소설을 꺼내 읽기엔 역 안이 너무 시끄럽다. 그냥 의자에 앉아 멍하니 티비를 본다. 옆자리의 할머니는 아까부터 계속 졸고 있다. 시간을 단축하는 건 결국 이런 거다. 중요한 시간을 빼서 쓸 데 없이 써버리는 것, 혹은 쓸 데 없는 시간만 더 늘어나게 되는 것.
부산에 대한 기억을 떠올려 본다. 고등학교 시절 우연히 보름동안 묵었던 도시, 그렇지만 그 보름동안 지하에만 있었던 기억, 대학교 시절 비가 오는 날 자갈치 시장에서 먹었던 매콤한 꼼장어의 맛, 그리고 언제던가 남포동 거리를 걸었던 기억. 그러고 보니 부산은 내게 낯설지 않은 도시다. 어느 도시나 그렇겠지만 조금만 기억을 더듬어보면 사소한 연결고리 하나쯤은 찾을 수 있고, 그 연결고리는 다시 다른 무언가를 끌어들인다.
지금은 결혼을 한 친구는 힘이 들 때면 ‘부산이나 가자’라는 말을 꺼내곤 했었다. 무작정 어두운 고속도로를 달려 부산의 바닷가에 가고 싶어 했다. 그 친구에게 부산은 어쩌면 특별한 의미가 있었는지도 모른다. 누구에게나 그런 곳이 한 군데쯤 있듯이.
5시에 출발하는 KTX에 올라탄다. 부산까지 한 번도 정차하지 않고 간다는 안내방송이 지루하게 반복되다 드디어 열차가 움직이기 시작한다. 차들이 달리는 거리를 지나고, 사람들이 걷는 거리를 지나고, 다리를 건너서 열차는 제법 빨리 달리기 시작한다. 시속 300Km에 도달했을 때 안내방송이 나온다. 자신이 KTX의 기장이라면서 지금 300Km로 달리고 있다는 남자의 목소리는 창밖의 소음에 묻혀버린다.
열차에 타기 전 산 비스킷과 녹차를 마신다. 열차에서 읽으려고 가져온 책을 꺼내들고 읽기 시작한다. 그러나 조금 읽다가 내려놓는다. 흔들리는 열차 때문에 머리가 아프다. 두 시간이나 빨리 간다는 열차 안에서 할 일이 없어져 버린 나는 그저 무심하게 창밖만 내다본다. 나무들과 자동차들이 다가왔다 사라진다. 창밖은 서서히 어두워진다. 집이 있는 사람들은 종종걸음으로 집으로 향하고 있을 시간, 나는 낯선 도시를 향해 시속 300Km로 달리고 있다.
iSLANd
2004/12/13 00:22
2004/12/13 0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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