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히 말하자면 9.11 테러가 나에게 큰 영향을 끼친 건 아니다. 텔레비전으로 생중계되는 장면을 보는 순간 놀랐지만 그건 먼 나라의 이야기였다. 게다가 미국이라는 나라에 대해서 별다른 호감이 있었던 것도 아닌지라 특별한 감정이 생길리 없었다. 물론, 수많은 죄없는 사람들이 죽었다는 사실은 충격적이었다. 사람이 사람을 죽인다는 건 어떤 이유로도 용납될 수 없다고 믿고 있었기에 테러범들을 향한 미국인들의 적대감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미국인들에게는 9.11 이전과 이후가 전혀 다른 세계가 되어버렸다는 건 이해한다. 그렇지만 역시 먼 나라의 이야기다. 직접적인 연관이 없는 내겐 그런 끔직한 일이 있었고 많은 사람들의 삶이, 나와는 상관없는 사람들이지만, 달라졌다는 것도 알고 있다. 세계정세가 달라진 것도 알고 있다. 그리고 그 방향이 잘못된 쪽으로 향하고 있다는 것도 알고 있다. 사랑하는 사람들을 잃은 사람들의 분노와 적대감, 무너져내린 오만한 자존심, 새로운 먹이를 찾고 있던 굶주린 맹수들의 눈. 그렇지만 테러에 대한 응징으로 똑같은, 아니 더 무자비한 폭력을 행사하는 그들을 보면서 뭔가 잘못된 거라는 생각을 했다.
영화 <화씨 9/11>은 꽤 선동적인 영화였다. 테러가 발생한 순간, 대통령이라는 작자가 했던 일들이며, 테러범이라고 지목한 사람들과 대통령의 유착관계며, 믿어지지 않는 사실들을 폭로하고 그들에게 신랄한 비판을 쏟아부었다. 영화를 보는 동안 관객들은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할 수 있었지만 내심 불편한 것도 사실이었다. 세계를 뒤흔들어 놓은 사건은 영화에도 영향을 끼쳤다. 빔 벤더스 감독의 <랜드 오브 플렌티>는 그렇지만 <화씨 9/11>과는 다르다. 그 사건이 발생하고 2년이 지났다. 사람들은 그 사건이 발생하기 전과 똑같이 평범하고 조용한 삶을 살아간다. 그렇지만 LA에 사는 폴은 다르다. 자신의 아름답고 위대한 조국 미국의 심장이 무너져내렸다는 사실을 결코 잊을 수 없는 폴은 자신만이라도 조국을 지켜야 한다는 사명감으로 경계를 늦추지 않는다. 그에게 아랍인들은 모두 잠재적인 테러범이고 국가안보를 위협하는 존재다.
폴의 조카 라나는 선교사인 부모님을 따라 세계곳곳을 떠돌다 어머니의 유언대로 연락이 끊긴 삼촌을 찾기 위해 조국 미국으로 돌아온다. 라나는 LA의 선교단체에서 일하면서 거리의 노숙자들에게 먹을 것을 나눠주는 봉사활동을 하면서 삼촌 폴을 찾는다. 우연히 라나와 연락이 된 폴은 조카가 일하는 곳에 가서 그녀의 동태를 살피지만 마음은 열지 않는다.
그러던 중, 폴이 테러범이라고 의심하던 아랍인이 라나가 일하는 곳으로 음식을 얻기 위해 오고, 그날 저녁 거리에서 총에 맞아 사망한다. 아랍인 하산이 총에 맞아 죽는 순간까지도 폴은 그에게 배후가 누구냐고 묻는다. 폴이 볼 때, 하산은 다른 테러 조직원에 의해 살해당한 또다른 테러범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라나는 하산의 죽음을 안타까워하며 그의 가족을 찾아 시신을 전해주려고 노력한다.
라나는 하산의 가족을 찾기 위해, 폴은 하산의 배후를 찾기 위해 각기 다른 목적으로 둘은 하산의 시신을 유일한 가족인 이복형이 살고 있다는 트로나로 옮기는 여정에 오른다.
어떻게 보면 라나나 폴이나 모두 이상주의자들이다. 라나는 자신이 좋아하는 아랍 친구들이 무역센터 건물이 무너지는 순간에 환호성을 지르는 걸 보고 혼란에 빠진다. 그들과 절친한 친구라고 믿었는데 자신의 조국인 미국의 심장부에서 테러가 벌어졌는데 어떻게 좋아할 수 있는지 라나에게는 믿을 수 없는 일이었다. 폴에게 미국은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자랑스럽고 위대한 나라였다. 그런데 일개 아랍인들에 의해서 가장 아름답고 위대한 나라의 심장이 무너져내렸다는 사실은 믿을 수 없는 일이었다. 두 사람은 자신들의 이상이 무너져내렸다는 사실을 믿을 수 없었고, 각기 다른 방식으로 그 해결책을 찾아나선다.
폴에게는 9.11테러 이전에 월남전의 악몽이 있다. 위대한 나라의 위대한 군인으로 참전했던 전쟁에서 폴은 동료들이 죽는 모습을 지켜봤고 무역센터 건물이 무너져내리는 순간 그 때의 악몽이 되살아난다. 그 악몽을 잊기 위해 폴은 자신의 위대한 조국을 지키기 위해 발벗고 나선다.
그 누구도 폴에게 손가락질을 할 수는 없다. 그에겐 위대한 조국 미국은 하나의 진리였고, 테러가 발생한 이후에도 여전히 진리다. 그런 진리를 거부하는 자들은 조국을 위해 제거해야 하는 게 그에게는 당연한 의무다. 라나에게는 피부색은 아무런 의미도 없다. 세상 모든 사람들이 친구인 그녀는 LA뒷골목의 노숙자들이나 박해받는 아랍인들을 이해할 수 없다. 낯선 사람에게 감시의 눈초리를 보내고 총을 겨누는 사람들 역시 그녀는 이해할 수 없다.
삼촌과 하룻밤을 보내면서 삼촌이 무슨 일을 겪었는지 조금이나마 알게 된 그녀에게 삼촌은 더이상 낯선 존재가 아니다. 폴 역시 라나에게 자신의 상처를 모두 보여준 후에 진짜 삼촌이 된다. 그리고 라나의 엄마가 마지막으로 부탁했던 일을 해나간다.
9.11 테러라는 소재 때문이기도 했지만 실은 빔 벤더스 감독의 영화라는 점이 더 끌렸다. 전작 <밀리언 달러 호텔>에서도 아름다운 이미지와 음악을 선보인 빔 벤더스 감독의 다른 영화들 역시 뛰어난 영상과 음악을 선보인다. <랜드 오브 플렌티>역시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영화의 후반부엔 미국의 풍광이 한 편의 뮤직비디오처럼 펼쳐지고 아름다운 선율이 흐른다. 테러니 이념이니 하는 것들을 떠나서라도 영화는 이미 충분히 아름다운 선물을 관객들에게 선물한다. 영화 홍보물의 한 귀퉁이엔 '명불허전'이라는 문구와 함께 OST선전이 적혀있다. 영화음악을 들어본 사람이라면 아마도 그 '명불허전'이라는 문구에 동의하게 될 것이다.
<랜드 오브 플렌티>, 풍요의 땅 미국에 관한 이야기, 가장 풍요로운 나라의 슬픈 우화라는 문구가 기억에 남는다.
미국인들에게는 9.11 이전과 이후가 전혀 다른 세계가 되어버렸다는 건 이해한다. 그렇지만 역시 먼 나라의 이야기다. 직접적인 연관이 없는 내겐 그런 끔직한 일이 있었고 많은 사람들의 삶이, 나와는 상관없는 사람들이지만, 달라졌다는 것도 알고 있다. 세계정세가 달라진 것도 알고 있다. 그리고 그 방향이 잘못된 쪽으로 향하고 있다는 것도 알고 있다. 사랑하는 사람들을 잃은 사람들의 분노와 적대감, 무너져내린 오만한 자존심, 새로운 먹이를 찾고 있던 굶주린 맹수들의 눈. 그렇지만 테러에 대한 응징으로 똑같은, 아니 더 무자비한 폭력을 행사하는 그들을 보면서 뭔가 잘못된 거라는 생각을 했다.
영화 <화씨 9/11>은 꽤 선동적인 영화였다. 테러가 발생한 순간, 대통령이라는 작자가 했던 일들이며, 테러범이라고 지목한 사람들과 대통령의 유착관계며, 믿어지지 않는 사실들을 폭로하고 그들에게 신랄한 비판을 쏟아부었다. 영화를 보는 동안 관객들은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할 수 있었지만 내심 불편한 것도 사실이었다. 세계를 뒤흔들어 놓은 사건은 영화에도 영향을 끼쳤다. 빔 벤더스 감독의 <랜드 오브 플렌티>는 그렇지만 <화씨 9/11>과는 다르다. 그 사건이 발생하고 2년이 지났다. 사람들은 그 사건이 발생하기 전과 똑같이 평범하고 조용한 삶을 살아간다. 그렇지만 LA에 사는 폴은 다르다. 자신의 아름답고 위대한 조국 미국의 심장이 무너져내렸다는 사실을 결코 잊을 수 없는 폴은 자신만이라도 조국을 지켜야 한다는 사명감으로 경계를 늦추지 않는다. 그에게 아랍인들은 모두 잠재적인 테러범이고 국가안보를 위협하는 존재다.
폴의 조카 라나는 선교사인 부모님을 따라 세계곳곳을 떠돌다 어머니의 유언대로 연락이 끊긴 삼촌을 찾기 위해 조국 미국으로 돌아온다. 라나는 LA의 선교단체에서 일하면서 거리의 노숙자들에게 먹을 것을 나눠주는 봉사활동을 하면서 삼촌 폴을 찾는다. 우연히 라나와 연락이 된 폴은 조카가 일하는 곳에 가서 그녀의 동태를 살피지만 마음은 열지 않는다.
그러던 중, 폴이 테러범이라고 의심하던 아랍인이 라나가 일하는 곳으로 음식을 얻기 위해 오고, 그날 저녁 거리에서 총에 맞아 사망한다. 아랍인 하산이 총에 맞아 죽는 순간까지도 폴은 그에게 배후가 누구냐고 묻는다. 폴이 볼 때, 하산은 다른 테러 조직원에 의해 살해당한 또다른 테러범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라나는 하산의 죽음을 안타까워하며 그의 가족을 찾아 시신을 전해주려고 노력한다.
라나는 하산의 가족을 찾기 위해, 폴은 하산의 배후를 찾기 위해 각기 다른 목적으로 둘은 하산의 시신을 유일한 가족인 이복형이 살고 있다는 트로나로 옮기는 여정에 오른다.
어떻게 보면 라나나 폴이나 모두 이상주의자들이다. 라나는 자신이 좋아하는 아랍 친구들이 무역센터 건물이 무너지는 순간에 환호성을 지르는 걸 보고 혼란에 빠진다. 그들과 절친한 친구라고 믿었는데 자신의 조국인 미국의 심장부에서 테러가 벌어졌는데 어떻게 좋아할 수 있는지 라나에게는 믿을 수 없는 일이었다. 폴에게 미국은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자랑스럽고 위대한 나라였다. 그런데 일개 아랍인들에 의해서 가장 아름답고 위대한 나라의 심장이 무너져내렸다는 사실은 믿을 수 없는 일이었다. 두 사람은 자신들의 이상이 무너져내렸다는 사실을 믿을 수 없었고, 각기 다른 방식으로 그 해결책을 찾아나선다.
폴에게는 9.11테러 이전에 월남전의 악몽이 있다. 위대한 나라의 위대한 군인으로 참전했던 전쟁에서 폴은 동료들이 죽는 모습을 지켜봤고 무역센터 건물이 무너져내리는 순간 그 때의 악몽이 되살아난다. 그 악몽을 잊기 위해 폴은 자신의 위대한 조국을 지키기 위해 발벗고 나선다.
그 누구도 폴에게 손가락질을 할 수는 없다. 그에겐 위대한 조국 미국은 하나의 진리였고, 테러가 발생한 이후에도 여전히 진리다. 그런 진리를 거부하는 자들은 조국을 위해 제거해야 하는 게 그에게는 당연한 의무다. 라나에게는 피부색은 아무런 의미도 없다. 세상 모든 사람들이 친구인 그녀는 LA뒷골목의 노숙자들이나 박해받는 아랍인들을 이해할 수 없다. 낯선 사람에게 감시의 눈초리를 보내고 총을 겨누는 사람들 역시 그녀는 이해할 수 없다.
삼촌과 하룻밤을 보내면서 삼촌이 무슨 일을 겪었는지 조금이나마 알게 된 그녀에게 삼촌은 더이상 낯선 존재가 아니다. 폴 역시 라나에게 자신의 상처를 모두 보여준 후에 진짜 삼촌이 된다. 그리고 라나의 엄마가 마지막으로 부탁했던 일을 해나간다.
9.11 테러라는 소재 때문이기도 했지만 실은 빔 벤더스 감독의 영화라는 점이 더 끌렸다. 전작 <밀리언 달러 호텔>에서도 아름다운 이미지와 음악을 선보인 빔 벤더스 감독의 다른 영화들 역시 뛰어난 영상과 음악을 선보인다. <랜드 오브 플렌티>역시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영화의 후반부엔 미국의 풍광이 한 편의 뮤직비디오처럼 펼쳐지고 아름다운 선율이 흐른다. 테러니 이념이니 하는 것들을 떠나서라도 영화는 이미 충분히 아름다운 선물을 관객들에게 선물한다. 영화 홍보물의 한 귀퉁이엔 '명불허전'이라는 문구와 함께 OST선전이 적혀있다. 영화음악을 들어본 사람이라면 아마도 그 '명불허전'이라는 문구에 동의하게 될 것이다.
<랜드 오브 플렌티>, 풍요의 땅 미국에 관한 이야기, 가장 풍요로운 나라의 슬픈 우화라는 문구가 기억에 남는다.

랜드 오브 플렌티 Land of Plenty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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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bject: 랜드 오브 플렌티 Land of Plenty (2004)
Tracked from lunamoth 3rd 2005/10/12 22:22 delete2005.09.15 개봉 | 12세 이상 | 123분 | 드라마 | 미국,독일 | 국내 | 국외 | 씨네서울 | IMDb | OutNow | RT 마지막 라나의 고백이 흐를 즈음 영화는 하나의 통렬한 고해의 면을 마주하게 합니다. 굳이 미국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