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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om STORY 2010/07/26 23:15
이건 냄새에 관한 이야기다.

돌아가신 할머니를 생각하면 떠오르는 풍경 하나.
뜨거운 여름날이면 부모님은 늘 바깥일을 하느라 바쁘셨다. 오전에 입고 나간 옷은 30분도 되지 않아 땀으로 흥건하게 젖기 마련이고, 점심을 드시고 나서 갈아입은 옷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니 매일매일 세탁기를 돌려야 했고, 우리 집 현관 앞엔 비가 오는 날에도 빨래 건조대가 가득 차 있었다.
해가 저물 무렵, 할머니는 빨래를 걷으셨다. 그리곤 그림자가 길게 늘어지는 마루에 앉아서 하나하나 정성스레 접으셨다. 내일이면 다시 입고 나가야 할 작업복이며, 낡은 수건, 그리고 우리 남매들이 입을 옷가지들.
그래서 어쩌다 해가 떨어질 때까지 빨래를 걷지 못한 날을 제외하곤 우리 집 빨래에선 잘 익은 햇볕냄새가 났다. 뽀송뽀송하다 못해 바삭거리는 수건에 얼굴을 문지를 때면 오후의 햇살과 할머니의 냄새가 났다.

장마철에도 예외는 아니었다. 낡은 세탁기는 매일매일 돌아갔고, 비가 오는 날이면 마루에 빨래 건조대가 펼쳐졌다. 지루한 장마가 계속되면 빨래에서 냄새가 나기 시작했다. 젖은 옷을 말리지 않고 두면 나는 그 냄새. 그러면 엄마는 빨래를 다시 돌렸다.

고등학교 시절, 집을 떠나 기숙사에 있을 때였다. 그 시절 빨래는 생존이었다. 땀에 찌든 옷을 세숫대야에 담고 세제를 풀어서 하루나 이틀, 혹은 며칠씩 묵혔다. 그리고 물에 헹궈서  방에서 말리면 그만. 옷에선 늘 냄새가 났고, 여름이면 곰팡이가 피기도 했었다. 이층 침대 여섯 개가 있는 방에 같이 살던 시커먼 녀석들 옷에서는 늘 냄새가 났고 누구도 신경을 쓰지 않았다.
그 시절, 진심으로 궁금했다. 어떻게 여자들의 옷에선 늘 향긋한 냄새가 나는 걸까? 내가 아무리 정성을 들여 빨고 햇볕에 말려도 내 옷에선 젖은 옷에서 나는 냄새가 났다.

결혼을 했고, 일주일에 한 번씩 최신식 세탁기를 돌렸다. 빨래에서는 향긋한 냄새가 났다. 빨래는 내 담당이 아니었으니까. 정말 신기한 일이었다. 어떻게 똑같은 옷을 똑같은 세제로 똑같은 세탁기에 돌렸는데 내가 하는 것과 아내가 하는 게 다른걸까? 그래서라고 하면 변명 같지만 나는 결혼생활을 하면서 빨래에는 손을 대지 않았다. 햇볕에 잘 마른 빨래를 갤 때나 도와주곤 했었다. 그렇지만, 그 빨래에서 예전에 맡았던 할머니의 손 냄새와 햇볕 냄새는 나지 않았다. 바삭거리지도 않았다.

작년 이맘때, 결혼한 친구 집에서 하루 묵은 적이 있었다. 친구의 아내가 집을 비웠고 나와 다른 친구, 그리고 집주인은 늦게까지 술을 마시고 안주인이 없는 집에서 잠을 잤다. 다음 날 아침, 술이 덜 깬 몸으로 샤워를 하고 수건을 집어들었을 때, 나는 잠깐 멈칫했다. 당연히 향기로운 냄새가 날 거라는 생각과 달리 수건에선 젖은 옷에서 나는 그 냄새가 났다. 친구 부부는 아이가 하나 있었고, 둘째를 가지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했다. 그리고 그 무렵엔 심하게 다퉜다고 했던가. 수건으로 몸을 닦으면서 나도 모르게 피식, 웃었다. 너희도 별거 없구나, 애 키우고 아옹다옹하며 사는 것도 별로 다르지 않구나 하는 생각에. 아내와 싸웠다고 밤새 울분을 토하는 친구를 보면서 배부른 소리 하고 있다고 했었는데, 수건에서 나는 냄새를 맡고 '결국 사는 건 다 똑같구나.'라는 생각을 했다.

작년 여름부터 내가 세탁기를 돌린다. 그리고 우리 집 수건에선 냄새가 난다. 새로 빨아서 입고 나선 옷에서도 그 냄새가 난다. 아무리 섬유유연제를 쏟아부어도 그 냄새는 사라지지 않는다. 지난주 비가 내리던 날, 나는 그 냄새가 나는 옷을 입고 당신을 만났다. 당신은 인상을 쓰며 빨래를 제대로 하라고 했다. 글쎄, 나라고 그러고 싶어서 그런 건 아니다. 늦은 밤 집에 들어가 샤워를 하고 수건으로 얼굴을 문지르면서 생각한다. 향기로운 냄새가 나는 수건으로 몸을 말리던 날들을.

그러니까 이건, 당신에 관한 이야기다.
2010/07/26 23:15 2010/07/26 2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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